다시 논란은 되었다지만 민주당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지금까지도 아무런 해명이 없다. 왜? 그래도 괜찮으니까. 민주당이 믿는 구석은 단 하나다.
“전북 유권자들이 우리 정당 안 찍을 수 있겠어?”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본선은 거저먹는 것인지라, 당내 경선에 목숨을 거느라 글 첫머리에 인용한 문제들도 발생하는 것이다.
강준만ㅣ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⑴ “도내 지방선거 후보자들 사이에서 ‘전북지역 선출직 공직자는 사실상 민주당 임명직이나 다름없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벌써부터 도내 지방의원들 사이에선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을 받기 위해 지역위원장인 민주당 국회의원에게 줄을 서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7월21일)
⑵ “민주당 권리당원 경선은 봉건적 유제로서 희미해져가던 학연·혈연·지연을 도리어 강하게 부활시켰다… 사회 곳곳의 ‘갑’들이 생존권을 무기로 ‘을’을 통해 당원을 모집하는 것은 이미 일상이다… 이처럼 공정과 정의와는 거리가 먼 경선 제도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금력도 없고 낡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정치신인들은 설 자리가 없다.”(8월6일)
⑶ “정당 간 경쟁이 무풍지대인 전북에서 민주당의 동원된 가짜 권리당원이 도지사와 시장 군수, 지방의원 등의 선출직 권력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꼴이다… 민주당은 끼리끼리 해먹는 기득권 세력의 폐쇄형 보호장치를 언제까지 활용할 텐가. 원성이 더 부풀기 전에 개선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8월18일)
이상 소개한 3개의 증언은 전북지역 신문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그런 모습은 전북만의 현실은 아니다. 지역주의로 인해 한 정당이 지역 내 선출직 권력을 거의 독식하는 ‘1당 독재’가 자행되고 있는 여러 지역에서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생각할수록, 이건 참 기가 막힌 일이다. 우리는 말로는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말을 긍정적으로 쓰면서도 그 풀뿌리가 썩어가고 있는 현실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어느 곳이건 ‘1당 독재’ 지역을 가보라. 지역정치에 대해 강한 비난을 퍼붓는 분노의 목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기이한 건 막상 선거에선 손가락은 딴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죽어라 하고 ‘1당 독재’ 정당에 표를 준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지방민들은 자기 지역의 발전엔 중앙권력이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엔 ‘1당 독재’ 정당에 욕을 퍼부으면서도 선거에선 그 정당이 중앙에서 힘을 가지라는 뜻으로 표를 주는 것이다. 이는 인질로 잡힌 사람들이 위협과 공포로 인해 인질범을 사랑하게 된다는 ‘스톡홀름 신드롬’이 아닌가.
나는 사석에서 지역정치를 비난하는 분께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래서 지난 총선 땐 어디 찍었어요?” 내 질문의 의미를 간파한 탓인지 그분은 쑥스러워하는 기색으로 ‘1당 독재’ 정당에 표를 주었노라고 했다. 차마 다른 정당엔 표를 줄 수 없었다는 변명도 곁들이면서 말이다.
일부 지역의 ‘1당 독재’ 문제는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이상으로 심각하다. ‘1당 독재’ 지역엔 경쟁이 없기 때문에 1당의 횡포가 심하다. 그래서 상식으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도 벌어지곤 한다. 지난해 4월 총선 때 ‘전주시 을’ 선거구에서 일어난 일이 대표적 예다. 당시 민주당 예비후보로 나선 유력 주자는 최형재·이덕춘·이상직 예비후보였다.
예상대로라면 3명 모두 경선에 참여했어야 했지만,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총선을 두달 남긴 시점에 최 후보를 갑자기 ‘컷오프’(배제)시켰다.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던 최 후보로선 황당한 일이었다.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별 흠결이 드러난 게 없는데다, 지지도가 높았던 최 후보가 경선에서 배제되자 큰 논란이 되었지만, 민주당은 끝내 이유를 밝히지 않았고, 결국 이상직 후보가 당선되었다.
억울하게 당한 최 후보는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패배했다. 유권자들의 민주당에 대한 응징도 없었다는 뜻이다. 선출직 공직자는 ‘민주당 임명직’이라는 속설을 확인시켜준 셈이다. 지금 나는 이 사건에 대해 ‘이상직, 횡령·배임 혐의로 결국 구속… 다시 논란 커지는 ‘민주당 공천 과정’’이라는 제목의 <경향신문>(2021년 4월29일) 기사를 참고해 쓰고 있다. 다시 논란은 되었다지만 민주당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지금까지도 아무런 해명이 없다. 왜? 그래도 괜찮으니까.
민주당이 믿는 구석은 단 하나다. “전북 유권자들이 우리 정당 안 찍을 수 있겠어?”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본선은 거저먹는 것인지라, 당내 경선에 목숨을 거느라 글 첫머리에 인용한 문제들도 발생하는 것이다. 여야를 막론한 대선 경선 후보들이 이런 ‘1당 독재’ 문제의 해결책을 선거 의제로 다뤄주기를 요구한다. 아니, 간절히 호소한다. ‘1당 독재’ 지역의 민주주의가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