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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프간 그녀는 잘 살고 있을까

등록 2021-08-26 14:07수정 2021-08-28 15:29

[크리틱]

스티브 매커리, <나시르바그 난민수용소의 아프간 소녀>, 1984, 페샤와르, 파키스탄(왼쪽), 스티브 매커리, <샤르바트 굴라>, 2002, 페샤와르, 파키스탄(오른쪽).
스티브 매커리, <나시르바그 난민수용소의 아프간 소녀>, 1984, 페샤와르, 파키스탄(왼쪽), 스티브 매커리, <샤르바트 굴라>, 2002, 페샤와르, 파키스탄(오른쪽).

이주은 | 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이전(before)과 이후(after) 사진을 찍는 때가 가끔 있다. 과거와 똑같은 배경과 조건에서 현재 사진을 촬영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그런 사진을 생산하는 주된 장소 중 하나는 병원이다. 가령 신체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몇개월 간격으로 초음파 사진이나 단층촬영 등을 통해 추이를 살펴보게 된다. 치과, 성형외과, 피부과 등 얼굴미용과 연결된 분야에서는 일반 카메라로 치료 전후를 기록해두기도 한다.

재난이나 전쟁과 관련한 뉴스에서도 시간의 경과에 따른 상태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이전과 이후 사진을 제시하곤 한다. 예를 들어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나면, 아마도 신문에 “드디어 끝났다!”라는 머리기사와 함께 종식 이전과 이후를 보여주는 자료 사진이 올라올 것임에 틀림없다. 하나는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 쓴 사람들이 걸어가는 황량해진 거리 이미지일 테고, 다른 하나는 웃는 얼굴에 손잡은 사람들로 활기찬 거리 이미지가 아니겠는가.

2002년 4월호 미국 <내셔널 지오그래픽>지에 어떤 여성의 이전과 이후 사진이 공개되었다. 이를 본 독자들은 17년 전의 한 소녀를 기억해냈다. 1985년 6월에 같은 잡지의 표지모델로 등장했던 이름 모를 ‘아프간 소녀’를 말이다. 두려움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소녀의 이미지는 전세계로 퍼졌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프간 지역의 갈등과 난민문제의 표상으로 각인되었다.

소녀를 카메라 렌즈로 마주했던 사람은 미국의 보도사진가 스티브 매커리(1950년생)다. 난민수용소에서 처음 본 열두살의 아프간 소녀는 소비에트의 헬리콥터 침공으로 부모를 잃은 상태였고, 할머니, 오빠, 여동생들과 함께 눈 덮인 산을 넘고, 걷고 또 걸어 도망쳐야 했다. 삶에서 잠시 스쳐 지나간 사람에 불과했지만 매커리는 미국에 와서도 줄곧 그녀가 눈에 밟히는 듯했다. 그사이 아프간 국민은 부패정권과 탈레반의 틈바구니에서 끝없는 고통을 겪었다. 수소문하니 그녀를 안다는 제보도 있었고, 자신이 바로 당사자라는 이도, 또 자기 아내가 그녀와 꼭 닮았다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찾아가 보니 누구도 기억 속의 그 눈빛은 아니었다.

미국이 ‘9·11사건’을 겪은 지 1년 후인 2002년에 매커리와 내셔널 지오그래픽 팀은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파견되었다. 이를 계기로 매커리는 ‘아프간 소녀’를 마침내 만났다. 옛 사진 덕분에 홍채패턴 인식으로 동일인 확인이 가능했던 것이다. 세월의 흔적이 남겨지기는 했지만, 타인을 경계하는 강렬한 초록 눈동자만큼은 여전했다. 이름은 샤르바트 굴라(1972년생), 열세살에 결혼하여 네 아이를 낳은 서른살의 엄마였다.

굴라는 오래전 누군가 자신을 사진으로 찍었다는 것은 기억했지만, 자기 얼굴이 그렇게 유명해져 있는 줄은 모르는 채 고향에서 살고 있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팀에서는 자선기금으로 가족의 의료비를 지원해주었고, 그녀가 카불에서 무탈하게 살기를 바라며 그곳을 떠났다. 그로부터 또다시 19년이 흘렀다. 카불은 분쟁의 집결지가 되어 있고 여성억압의 인습은 더 심해졌다.

이전과 이후 사진을 찍을 때 우리가 얻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예전과 비교하여 현재는 한결 만족스럽다는 기분을 누리고 싶을 때, 해피엔드를 보여주기 위해 이전과 이후 사진이 필요한 것이다. 답답하고 암울했던 시기가 지나갔다는 안도감, 그리고 이제는 자유롭고 평화롭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려는 의도가 아니겠는가. 그냥 변화가 아닌, 이상적인 변화를 은연중에 기대하는 것이다. 그때 서른살이던 굴라는 지금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지만, 솔직히 그녀의 현실을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곳에서의 삶이 더 나아졌으리라는 확신이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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