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탈레반 지휘부는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 집무실을 점령한 사진으로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장악했음을 알렸다. 소총을 든 무장대원들과 스마트폰으로 현장을 촬영하는 조직원들이 함께 담긴 사진이었다. 2001년 탈레반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안 석불을 파괴하고, 여성 교육과 활동을 금지하는 등 반문명적 퇴행의 상징이었는데 최신 정보기술의 적극 사용자가 되어 돌아왔다. 20년 전 탈레반은 인터넷을 금지했지만, 이젠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로 메시지를 내보내며 국제사회의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탈레반의 대외창구인 자비울라 무자히드 대변인의 트위터 팔로어는 34만명이 넘는다. 무자히드는 날마다 수십개의 글과 동영상을 올리며 탈레반의 새로운 정책을 알리고 있다. 2017년 4월 개설한 트위터엔 2만9천개 넘는 메시지가 쌓여 있다. 탈레반은 파슈토어, 다리어, 영어 등 5개 언어로 정치보복 금지와 일상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소셜미디어 기업이 ‘탈레반 계정’을 허용하는 기준은 제각각이다. 페이스북과 유튜브, 와츠앱 등은 탈레반 계정을 불법화했지만 트위터는 허용한다. 미국에서는 트위터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계정에 대해 폭력 선동 등을 이유로 영구정지시킨 것과 비교되고 있다.
탈레반은 20년간 천문학적 규모의 돈과 군사력을 쏟아부은 미군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안정된 권력을 구축하려면 진짜 고비를 넘어야 한다. 인터넷과의 대결이다. 아프간은 20년 전과 다르다. 시장조사업체 슈타티스타에 따르면, 아프간의 휴대전화 사용자는 2005년 100만명에서 2019년 2200만명으로 폭발적 증가를 했다. 탈레반은 국민들의 인터넷 사용을 전면 차단하든지 중국이나 파키스탄처럼 국가 차원의 검열을 해야 하는데 고도의 기술과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제임스 루이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은 탈레반이 파키스탄을 롤모델로 삼을 것으로 봤다.
10년 전 들불처럼 번지다가 꺼진 ‘아랍의 봄’은 소셜미디어와 민주주의의 관계에 관해 섣부른 전망을 불허한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경험한 국민들을 어디까지 종교와 권력의 힘으로 억누르고 길들일 수 있을 것인가, 탈레반의 존망을 건 실험이 시작됐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