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도심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김수헌 ㅣ 경제팀장
독한 전세난 와중에 겁도 없이 집 팔고 세입자가 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급등하는 매매·전세시장, 주택임대사업자 제도 등을 3개월 동안 한꺼번에 실전에서 겪은 체험담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집을 팔기로 하고 중개업소를 찾은 게 5월 초였다. 서울 아파트 평균가에 한참 못 미치는 변두리 저가 아파트다. 30대 중반이던 2009년에 사고 나서 10년 넘게 집값 신경 안 쓰고 살았다. 올해 초쯤 뒤늦게 실거래가 장기 그래프를 찾아봤다. 간혹 내가 산 가격보다 내린 적도 있었지만 2016년까지 큰 변화는 없었다. 그러다 2017년부터 조금씩 오르더니 지난해 내내 급등했고 올해 들어서는 매입가의 2배 이상에 실거래가가 형성됐다.
5~6개 정도 나와 있던 매물 가운데 가장 싸게 집을 내놨다. 내가 제시한 가격보다 5% 높은 호가의 매물도 여럿 있었다. 과연 저 가격에 팔리겠느냐는 의문이 들었다. 중개업소에선 “배짱 매물”이라고 했다. 호가와 실거래가 차이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는데 현장 상황이 정말 그랬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인데도, 한동안 집 보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고점에서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정체기’에 들어선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거래량은 줄고 있었다. 그나마 한 달쯤 지나자 중개업소에서 연락이 왔다. 10명가량 집을 봤는데 사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히 몇 사람 더 집을 보여준 뒤, 매수 희망자가 나왔다. 호가보다 살짝 낮은 가격에 미련 없이 계약서를 썼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 예비 ‘신규 세입자’로 전세난의 한복판에 뛰어들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계약갱신권과 임대료 인상률 상한제를 도입한 새 임대차법 이후 전세시장은 예상대로 신규 진입자에겐 ‘터프’했다. 학군지의 대단지 아파트 전세를 구하려 했다. 일단 물량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못 구할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가격. 집 판 돈을 몽땅 털어 넣어야 했다. 해당 아파트 전세 거래 데이터를 찾아봤다. 대략 열에 일곱이 갱신계약, 나머지가 신규계약으로 추정됐다. 신규계약은 갱신계약보다 전셋값이 60~70%나 비쌌다. 익히 듣던 ‘이중가격’이다.
세입자에게 유리한 전세가 급감하고 부담이 큰 월세가 늘고 있다는데, 이번에 좀 따져보니 월세가 꼭 불리하지는 않을 것도 같았다. 이 아파트에선 보증금 1억원을 대략 월세 30만원으로 쳤다. 월세전환율 3.6% 수준이다. 주거래은행에 전세대출을 알아봤더니 우대금리(0.9%) 다 받아도 금리가 3.22%라고 했다. 월세는 2년 고정이다. 반면 기준금리 인상 전망이나 시중은행의 우대금리 축소 움직임을 고려하면 6개월 뒤 대출 금리는 3.6%를 넘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전세와 월세를 놓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도중에 중개업소에서 메시지가 왔다. 처음 본 집보다 40%나 싼 가격에 전세가 나왔다고 했다. 이게 웬 ‘횡재’인가 싶어 바로 연락했다. 아파트 8년 장기임대사업자 집인데, 기존 세입자가 2년 만에 집을 사서 나간다고 했다. 임대사업자는 세입자가 바뀌더라도 보증금을 최대 5%까지만 올릴 수 있다. 덕분에 나 같은 ‘신규’도 5~6년 정도 저렴한 전셋집에 살 수 있게 됐다.
주택임대사업자 제도는 ‘과도한 세제 혜택으로 다주택자에게 투기 꽃길을 깔아줬다’는 비난 속에 집값 급등 주범으로 지목돼 왔다. 납득할 만한 주장이다. 하지만 임대사업자에게 전세를 든 세입자 입장에선 다르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세입자로 처지가 바뀐 나부터도 톡톡히 혜택을 보게 된 것 아닌가.
P.S. 개인적으로는 집을 매도함으로써 집값 하락에 ‘베팅’한 셈이 됐다. 주택임대사업자 제도 덕에 주거 안전망도 확보했다. 혹여나 이런 이해관계가 부동산 관련 기사를 쓰거나 데스킹할 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 객관성을 잃은 채 기사로 집값 하락을 부추기거나, 임대사업자 제도의 한쪽 측면만 옹호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겠다는 약속이다.
minerv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