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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양산 쓰는 남자’의 출현 / 손원제

등록 2021-08-22 15:51수정 2021-08-23 02:09

양산 쓰는 남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뜨거웠던 이번 여름이 남긴 변화의 하나다.

역사적으로 보면, 양산 쓰는 남자의 출현은 일종의 복고다. 서양에선 양산이 우산보다 먼저 만들어졌다. 우산의 영어 단어 엄브렐라(umbrella)는 ‘그늘’을 뜻하는 라틴어 움브라(umbra)에서 나왔다. ‘빛 가리개’에 ‘비 가리개’ 기능이 나중에 추가됐음을 말해준다. 실제 양산을 처음 만든 곳은 고대 이집트로, 파라오가 햇빛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서양과 달리 중국에선 처음부터 양산 겸 우산을 만들어 썼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근대 이전의 양산은 신분의 상징이었다. 왕과 귀족, 양반이나 썼다. 또 공식 행사에서 주로 썼으니 아무래도 남자들이 주된 사용자였다.

근대 들어 우산과 양산이 구분되고 양산되면서, 양산은 여성용으로 특화되는 길을 걷는다. ‘양산은 여성용’이라는 인식이 바뀌는 건 역시 폭염 때문이다. 생활용품에까지 성별 구분을 씌운 종래의 젠더 인식 자체가 도전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보다 더 무더운 일본에선 2011년부터 민간 차원의 ‘남성 양산 쓰기’ 운동이 벌어졌고, 2019년엔 중앙정부 차원의 캠페인이 시작됐다. 2018년 한 설문조사에선 87%가 “남성이 양산 쓰는 게 이상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한국도 최근 몇년 사이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남녀 모두 양산 쓰기’가 확산되고 있다. 보수적인 도시로 알려진 대구에선 요즘 양산 쓴 남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대구시가 3년째 실시하고 있는 ‘양심양산 대여 서비스’ 효과라고 한다. 지난해까지 6곳에 대여소를 차려 시범사업을 했는데, 올해 관공서와 관광지 등 160곳으로 확 늘렸다. 부산, 대전, 충남 등의 기초자치단체들도 비슷한 서비스를 하고 있다.

‘백미’는 국립국어원이다. 지난달 말 표준국어대사전의 ‘양산’ 뜻풀이를 수정했다. ‘주로 여자들이 볕을 가리기 위하여 쓰는 우산 모양의 큰 물건’에서 ‘주로 여자들이’를 뺐다. 미용실과 스카프도 같이 바꿨다.

미용실은, 30여년 전부터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아온 처지에서 ‘왜 이제야’ 싶다. ‘양산’은 신선하다. 요 몇해 뜨거운 날 가끔씩 양산을 써왔다. 묘하게 눈치가 보였다. 이제 쓸데없는 부담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공인을 받은 것 같아 반갑다.

손원제 논설위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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