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원 국제뉴스팀장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입성한 15일(현지시각) 이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 몰려든 아프간인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비행기 한대를 향해 수백명이 한꺼번에 활주로에서 뛰는 모습, 비행기 탑승 계단에 벌떼처럼 매달려 있는 모습, 비행기 동체 위에 올라가고 수송기 바퀴까지 매달린 모습은 처절하고 절박했다. 탈레반은 집권 기간이었던 1996~2001년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적용한다며 여성이 혼자 거리에 돌아다니는 것을 금지하고 투석형과 손목 절단형을 시행하는 등 공포 정치를 폈다. 20년 만에 탈레반의 귀환을 바라보는 아프간인들의 불안감은 깊어 보인다.
아프간 문제를 한국과는 관계없는 그저 안타까운 ‘타국의 일’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사실 한국군은 아프간 문제에 꽤 오래전부터 깊숙이 관여해왔다. 2001년부터 해군수송지원단(해성 부대), 국군의료지원단(동의 부대), 건설공병지원단(다산 부대), 아프간재건지원단(오쉬노 부대) 등이 파병됐다. 아프간 바그람 기지에 주둔했던 10여개국의 군대 중 하나가 한국군이었다. 2007년에는 바그람 미군 기지 앞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한국군 1명이 희생되기도 했다. 2014년 오쉬노 부대가 아프간에서 철수할 때까지 14년간 한국군은 아프간 전쟁과 아프간 재건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
‘항구적 자유작전’이라는 이름으로 2001년 10월부터 시작해 20년간 아프간에서 전쟁을 벌였던 미국은 미군 통역 등 미국에 협조하는 이들을 대피시키고 있다. 미국은 이른바 특별이민비자(SIV) 프로그램에 따라 미국에 협력했던 이들과 가족 5만여명을 미국 또는 제3국으로 대피시킬 계획이다. 미국 다음으로 아프간 전쟁에 가장 깊숙이 개입했던 영국은 아프간 주둔 영국군 등을 위해 일했던 아프간인 통역 등 현지 직원 및 가족 5천명을 영국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폴란드 정부도 폴란드 군인과 외교관을 도왔던 아프간인들을 수용하기 위해 카불에 항공기를 보냈다. 한국도 한국 정부와 함께 일했거나 한국 정부를 도왔던 아프간인들이 신변의 위협을 느껴 대피하려 한다면 마땅히 도와야 한다.
또한 아프간 난민은 국제사회가 함께 대처해야 할 주요한 문제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다른 나라로 탈출한 아프간 난민은 현재 약 250만명에 달한다. 유엔난민기구는 올해 들어 내전 격화로 삶의 터전을 잃고 아프간 내에서 흩어진 ‘내국인 난민’도 55만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탈레반은 카불 입성 이틀 뒤인 17일 처음으로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이슬람 율법 아래서 여성 인권을 존중할 것”이라며 과거와 달라진 태도를 내비쳤지만, 공포 정치가 근본적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결국 많은 난민이 새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주변국을 포함한 각국이 아프간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영국군을 도왔던 아프간인을 수용하는 것 외에 별도로 아프간 난민 2만명을 장기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아프리카 우간다는 미국의 요청으로 아프간 난민 2천명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코소보와 알바니아도 일시적으로 아프간 난민을 받기로 했다. 아프간의 이웃 국가인 우즈베키스탄은 아프간 탈출 난민 운송 지원을 위해 수도 타슈켄트와 북서부 나보이주의 공항도 제공할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도 우리를 도왔던 아프간인들의 대피를 돕거나 수용하는 최소한의 도리는 물론, 탈레반의 공포 정치를 피해 떠난 아프간 난민들을 품는 최대한의 인도주의적 조처를 취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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