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혜|시인
글 쓰는 일을 하다 보니 ‘맞춤법에 까다로울 것 같다’는 이미지가 붙어 있다. 가끔 메일이나 문자를 주시는 분들이 ‘철자를 틀렸을까 봐 걱정된다’는 말씀을 덧붙이시곤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가 과연 문법에 얼마나 예민한가 돌아보게 되었는데 사실 업무 외 분야에 있어서는 ‘별생각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나 역시 사적인 자리에서는 문법이나 표기법을 제멋대로 어기곤 하기 때문이다. 단 업에 있어서는 자세가 다른데,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쓰는 글이 출판되거나 송출되어 두고두고 남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낙장불입의 상황 덕에 엄격해진 부분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맞춤법에 있어서는 광고 일을 할 때 가장 긴장된다. 광고 문안에 오탈자를 내면 전국구급 망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카피라이터들이 수없이 퇴고를 하고 교정을 보지만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그럼에도 실수가 빚어지곤 한다. 모 자동차 브랜드 광고를 만들 때였다. 인쇄광고에 “첨단기술로 새로워진…”이라는 문구를 쓴다는 게 실수로 “첨단기술로 해로워진…”이라고 썼다. ㅅ과 ㅎ은 키보드상 이웃사촌인데 깜빡 바꿔 썼다 새로운 자동차를 해로운 자동차로 만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집행 직전 발견해서 고칠 수 있었다.
모 가전브랜드의 광고를 제작할 때였다. 명절에 국내 유수 일간지 모두에 전면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광고였다. 시즌이 시즌인지라 헤드라인에 커다랗게 윷놀이 어쩌고 하는 문구가 들어갔다. 1차 물량은 제대로 집행되었고 소소한 크기 변환을 해서 나머지 지면에 2차 광고가 나갈 타이밍이었다. 어차피 이미 한번 나간 광고이고, 지면 사이즈에 맞추는 잔수정 작업만 남았기에 나는 최종본 확인을 ‘패스’했다. 명절 분위기에 들떠 어서 퇴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날 휴일을 맞은 나는 신문 전면을 채운 ‘윳놀이’라는 글자를 발견했다. 누군가 작업 도중 실수로 고쳐 쓴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책임은 내 몫이었다. 최후까지 확인하지 않은 나의 안이함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황당한 실수 정도지만 당시엔 눈앞이 캄캄했다. 전국을 돌며 신문을 수거하고 싶었다. ‘우리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며 광고주가 손해배상을 하라고 할까 봐 연휴 내내 떨었다. 물론 실제로 별다른 일은 없었지만.
모 의자브랜드 광고에서는 이런 실수를 했다. 영상 광고였는데 ‘당신의 하루를 맞춰 볼까’라는 자막을 넣은 것이다. 맞는 표기는 ‘맞혀 볼까’였는데 시청자분들의 지적을 받고 나서야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의 실수들이 어쩌다 삐끗한 것이라면 이번 실책은 ‘정말 몰라서’ 벌어진 일이라 더 부끄러웠다. ‘몰라서’ 겪은 사건은 하나 더 있다. 작년에 한 신문사에 글을 전달하며 ‘셰익스피어의 말이 맞다’라고 써서 드렸는데 ‘셰익스피어의 말이 맞는다’라고 실린 것을 발견했다. 나는 신문사에서 낸 오탈자인 줄 알고 수정을 부탁하려 했는데, 놀랍게도 그분들이 쓰신 것이 문법적으로 옳았다. 여전히 어색하지만 확실히 ‘맞는다’가 맞는다.
역시 나도 아직 멀었다. 하지만 나는 믿는 구석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문명 기술이다. 내가 쓰는 모든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에는 사전앱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배치되어 있다. 나는 흔한 단어도 일일이 사전을 찾아보고, 쉬운 문장도 수시로 맞춤법 검사기에 넣어 돌려 본다. 어차피 인간 뇌의 용적은 한계가 있고 나 역시 어린 시절 머리에 심어둔 맞춤법을 꾸역꾸역 인출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상시 대기 중인 디지털 에디터가 있다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지금 이 글 한 편도 나는 수없이 사전을 찾으며 완성했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