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목 | 번역가·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2018년에 사망한 미국 소설가 필립 로스는 2010년 초 은퇴하면서 존 치버의 전기를 썼던 블레이크 베일리를 공식 전기작가로 고용해 개인 자료를 다 제공하고 모든 질문에 답해주고 주변 인물 인터뷰까지 주선해주었다. 그리고 전기가 완료되면 자료 일부는 2050년에 공개하고 일부는 파기하게 했다. 치밀한 사후 계획을 세운 셈이다.
이는 좋게 보아 꼼꼼하다 할 수 있는 로스의 성격을 보여주지만(한국어판 표지까지 직접 챙기는 사람이었다), 이면에서는 사후에 자신이 기억되는 방식을 걱정하며 그것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로스는 2013년 인터뷰에서 자기 앞에 재앙이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죽음이고 또 하나는 전기라고 하면서, “죽음이 먼저 와주기를 바라자”고 농담을 한 적이 있다. 이때 이미 그는 베일리와 협업을 하고 있었고, 이를 두고 그가 자기 전기의 유령 작가가 되려 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베일리 자신은 로스가 전기작가의 최종 권한을 인정해 주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처지에서 로스가 쓰라는 대로 썼다고 말할 리야 없으니 결국 전기 자체를 살펴볼 수밖에 없는데, 이 책은 로스를 공감이 가는 인물로 그렸지만 “어용”이라고 욕먹을 만큼 객관성을 잃지 않은 것은 분명하며, 사실을 최대한 파악하되 논란이 큰 부분은 로스의 입장을 비롯한 여러 관점을 함께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살아서 결과물을 통제할 가능성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로스도 내심 현실적인 기대치를 이 정도로 잡지 않았을까.
로스는 자신이 평생 크게 두가지 점에서 오해를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는 반유대주의자 또 하나는 여성혐오자라는 낙인이었다. 이 가운데 반유대주의자라는 공격은 말년에 유대교 기성 체제의 인정을 받으면서 정리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전투는 끝났고 내가 이겼다.” 그러나 그가 작품에서 여성을 다루는 방식을 두고는 계속 논란이 있었고, 로스는 두번째 부인이 이혼 뒤 쓴 폭로성 책이 여성혐오자라는 이미지를 굳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누군가 이 이야기를 바로잡아야 한다. 아니면 이게 이야기가 된다.”
이것이 로스가 전기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한 계기이기도 한데, 결국 그는 자신의 비관습적인 사생활을 심판하지 않을 전기작가에게 내밀한 부분까지 모두 드러내는 쪽을 택했다. 평소 태도로 볼 때 로스는 자신을 좋게 기억해주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기억해주기를 바랐고, 그래서 그런 전략을 택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그 결과 이 전기는 로스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뭐 이런 것까지, 할 만큼 적나라해졌는데, 바로 이것이 전기의 작가와 대상이 모두 이 작업에 진심이었다는 방증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듯하다.
물론 그 정확성이란 그가 보는 정확성일 뿐이므로 그런 요구는 결국 좋게 봐달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 또 적나라함은 다 보여주는 척하면서 정작 중요한 부분은 가리는 양동작전에 불과하다는 비판은 가능하고 그렇게 이 논쟁은 진지하게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게 다 로스의 계획 속에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전에 뜻대로 안 되던 일이 사후에 그렇게 계획대로만 되겠는가. 전기가 나온 직후 과거에 베일리에게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베일리 본인은 부인하지만, 전기를 냈던 명망 있는 출판사는 바로 책을 절판해버렸다. 며칠 전까지 중요한 문학 전기작가로 자리를 굳히던 저자는 로스를 다룰 자격마저 의심받고, 급기야 전기의 작가나 대상이 결국 한통속이었다는 비판까지 나오게 되었다. 딱 로스의 소설에 나올 법한 상황 전개다. 아, 전기와 현실과 소설을 둘러싸고 작가와 전기작가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유작을 남기는 것, 혹시 이게 그의 진짜 사후 계획이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