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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징벌적 손해배상과 형사처벌 / 박용현

등록 2021-08-18 16:26수정 2021-08-19 02:38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표현의 자유 옹호단체들은 명예를 훼손하는 언론 보도에 대한 민형사 제재와 관련해 많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형사처벌은 정당한 보도마저 주저하게 만드는 ‘위축 효과’가 가장 크기 때문에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유엔인권위원회는 2011년 “회원국들은 명예훼손을 범죄로 다루지 않는 것을 고려해야 하며, 특히 징역형은 결코 적절한 제재 수단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지속적으로 “형사적 제재, 특히 징역형은 절대 가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우리나라를 비롯해 명예훼손죄를 두고 있는 국가에 폐지를 권고해왔다. 이에 따라 세계적으로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을 폐지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영국에서는 1970년대 이후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사례가 없다. 최근에는 2016년 짐바브웨, 2018년 레소토, 2020년 시에라리온 등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등으로 명예훼손죄를 폐지했다. 표현의 자유를 적극 옹호하는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미 1964년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정당화되지 못한다고 밝혔다.

형사처벌의 대안은 민사소송을 통한 손해배상이다. 국제기구들은 이 경우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은 극단적인 사례에만 적용하고 배상액의 한도를 법으로 정해놓을 것 등을 권고한다.

우리나라는 유엔의 권고를 아직도 받아들이지 않고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는 국가 중 하나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미국산 소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문화방송>(MBC) ‘피디수첩’ 제작진이 기소됐다(이 사건은 1·2심과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는 칼럼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에 의혹을 제기한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이 기소됐다(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뒤 검찰이 항소를 포기했다). 아직도 언론 보도에 대한 명예훼손죄 고소·고발은 당연시되고 있다.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반발하는 목소리가 크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제사회의 기준에 부합하는지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를 더 옥죄는 것은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이다. 정작 이를 폐지하자는 목소리는 낮고 드물다. 의아한 일이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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