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석 | 문화비평가
열대야를 즐기는 관엽들을 모시느라 여름밤에도 할 일이 많다. 며칠 전 해가 기울자 마당에 분갈이를 하러 나갔다. 나의 마당이란 계단식 빌라의 남의 집 옥상,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이지만 하늘과 바람을 맞는 곳이다. 허리를 숙이고 토분을 닦는데 머리 위에서 뭔가 툭 떨어졌다. 시원한 단비면 좋으련만, 담배꽁초였다. 나는 이 순간을 기다렸다.
이사 오고 여기저기서 꽁초가 날아왔다. 따닥따닥 붙은 다른 집의 창이나 옥상에서 던진 것일 테고, 나는 바람에 날아온 낙엽이려니 쓸어 치웠다. 그런데 두어달 전부터 내가 방을 나오면 발을 딛는, 안 쓰는 욕조를 화단처럼 만들어놓은 그곳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분명 바로 위 공용 옥상. 그러니까 이 건물의 사람이다. 이건 좀 아니죠. 나는 옥상 입구에 쪽지를 붙였다. 일주일쯤 효과가 있다 말았다. 이제 아침마다 마당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상쾌는커녕 불안과 짜증의 범벅이 되었다. 잡히기만 해라. 그리고 그 순간이 왔다.
목을 빼고 보니, 옥상 입구의 불이 켜져 있었다. 범인은 아직 저기 있다. 나는 두근대며 계단을 올랐다. 그런데 정말 마주치면 뭐라고 하지? 화를 내나, 설득을 하나, 부탁을 하나? 소심한 나는 고민에 빠졌다. 비겁하게, 그를 이해해볼까 하고 있었다.
우리 할머니는 꽁초 없는 담배를 피웠다. 깡통 안의 연초를 사전 종이에 말아 피웠는데, 손자들은 군대에서 받은 담배를 뜯어 연초만 모아다 드렸다. 하지만 내가 꽁초가 밉다고, 건강보험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지울 순 없겠지. 이건 어떨까? 저절로 썩는 꽁초 안에 씨앗을 넣는 거다. 브랜드마다 코스모스, 해바라기, 봉선화 다른 꽃이 피면, 꽁초를 자기 집 화단에 버려달라고 하지 않을까? 아마 안 되겠지?
나는 솔직히 흡연 문화가 이렇게 빠른 시간에 바뀐 게 믿기지 않고, 그에 감사한다. 예전엔 버스, 극장에 연기가 가득 찼고, 식당 그릇에 꽁초를 버리기도 했다. 나는 그들에 대한 반감이 커 얄미운 짓도 많이 했다. 군대에서 개인 연초비를 일괄적으로 걷어 담배를 사서 나눠줬는데, 내가 고참이 되자 칼같이 돈으로 나눠줬다. 직장에선 ‘흡연은 동료를 살해하는 가장 우아한 취미다’라는 표어를 써 붙이거나, 상사에게 흡연 문제가 해결 안 되면 퇴사하겠다고도 했다. 솔직히 과했다.
이제 흡연자는 사회의 소수가 되었다. 그들은 여러 위험을 무릅쓰고 좁은 흡연실이나 침침한 골목에서 담배를 피운다. 힘든 노동이나 공부의 사이에 잠시 탈출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어서일 것이다. 그 일탈의 끝에 손에 남은 흔적을 힘껏 바닥에 내던지는 게, 그 모험을 완성하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 한번은 이런 생각도 했다. 우리 옥상에 흡연자를 위한 의자와 작은 쓰레기통을 놓아둘까? 그러기엔 내가 옹졸했다. 곧바로 마음을 바꾸어, 꽁초의 침 성분을 분석해 범인을 색출하면 어떤 처벌을 받게 할 수 있나 검색했다.
옥상 문을 여니 가끔 보던 주민이 있었다. 나를 보더니 놀라며 핸드폰을 보는 척했다. 손엔 담배가 없었지만, 전화가 안 터져 여기 올라오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저절로 닫히는 옥상 문을 붙잡고 발 한쪽만 내놓은 채 씩씩댔다. 도대체 어떻게 따질까? 땀에 젖은 나의 안경은 옥상 곳곳에 나뒹구는 꽁초들을 보았다. 우리 마당을 내려다보는 벽엔 묘하게 양쪽으로 꽁초가 나뉘어 있었다. 마치 딱 거기에 투명인간이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듯했다. 열대야의 한가운데 후덥지근한 바람을 맞으며, 멀리 하늘을 보며 힘든 마음을 연기에 날려 보내고 있었다. 그러곤 아래의 화단에 깃든 휴식이 얄미워 톡 하고 꽁초를 떨어뜨렸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옥상 입구에 꽁초를 내려놓고 왔다. 그날 이후 아직 꽁초의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