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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심채경의 랑데부] 지구 밖, 낯익은 공간

등록 2021-08-05 18:37수정 2021-08-06 02:36

랑데부

심채경 천문학자

영화 <애드 아스트라>에는 달 공항이 나온다. 지금에 비하면 아주 쉽게 인류가 지구와 달을 오가는 시대가 배경이다. 마치 비행기를 타듯 달 착륙선을 타고 달 표면에 도착하면 승객을 공항 건물로 인도하는 탑승교가 착륙선으로 다가온다. 탑승교의 접혀 있던 주름이 하나씩 펴지며 착륙선과의 도킹에 성공하면 승객들이 그 통로를 걸어 달 공항에 들어선다. 사람들은 샌드위치를 파는 식당, 기념품 상점, 택배 접수처 따위가 늘어서 있는 면세점을 향해 걷는다. 그 옆으로 군인이 군견을 데리고 서 있다. 도입 금지 물품을 숨겨가지고 들여오는 자가 있는지 감시라도 하는 듯하다. 에스에프(SF)영화에서 보여주는 장면치고는 상당한 현실감을 준다. ‘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표지판까지.

달 공항의 면세점에서 달에서 나는 광물로 만든 제품을 구경할 날이 어쩌면 그리 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우주가 곧 산업의 원천이 되고, 재료가 되고, 목표가 되는 새로운 우주 시대, 뉴 스페이스 시대의 서막이 열리고 있다. 과거의 우주 탐사는 주로 국가 단위로 이루어졌고, 다소간의 정치적 쓰임을 염두에 두고 정부가 주도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정부 주도의 국가적 우주 탐사를 경험해보지도 못했는데, 시대는 그런 것이 이제 구식이라고 한다. 이제는 화물 운송 회사가 우주에까지 화물을 실어 보내주고, 지구 밖 다른 천체에 기념물이나 타임캡슐을 보내는 시대가 온다고 한다. 달이나 화성을 방문하거나, 우주에서 캐온 광물을 정제해 휴대전화나 다른 전자제품의 부속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지구에서는 매장량이 한정되어 있어 지속적으로 얻기 어려운 희토류가 달에는 지천으로 널려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바닷가에서 조약돌 줍듯 널려 있다는 뜻은 아니다. 지구에서 그러하듯이, 원석을 파내서 분리하고 거르고 다듬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달에서 직접 제련해서 핵심 부분만 지구로 보내온다면 어떨까. 무게가 줄어 운송비는 덜 들지만 제련에 필요한 설비와 인력을 현지에 배치하는 비용이 든다. 원석을 그대로 지구로 보내면 최종 결과물에 비해 훨씬 무거운 중량을 운송해야 하니 비효율적이지만, 지구에 갖춰진 설비와 축적되어 있는 경험으로 더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회사의 경영진은 둘 중 어느 쪽이 더 이득인지 따질 것이다. 혹은 제3, 제4의 대안을 찾아내고 제시할 것이다. 광물을 캐러 오가는 길에 가벼운 물품의 운송을 겸하거나, 광물을 캐는 로봇팔에 후원금을 낸 기관의 로고를 새길 수도 있을 것이다. 뉴 스페이스 시대 우주 산업의 몇몇 단면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그렇게 <애드 아스트라>는 달이라는 지구 밖 공간에 지구 공항을 꼭 닮은 낯익은 공간을 살포시 얹어둠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달까지 오가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현실의 품 안에 넣어준다. 달에 착륙하는 것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낯익은 장면은 또 하나 있다. 주인공 일행은 인적이 드문 곳에서 월면차를 타고 달리다 미지의 세력으로부터 총격 세례를 받으며 카레이싱을 방불케 하는 추격전에 말려드는데, 그 월면차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아폴로 우주인들이 달에서 타고 다녔던 월면차를 쏙 빼닮았다. 경운기를 떠올리게 하는 외양에 낚시용 의자보다도 불편해 보이는 좌석과 한쪽 끝에 달린 접시형 안테나까지. 그걸 타고 달리다 총을 맞으면 어찌 되겠는가. 달 공항에 면세점까지 갖춘 미래에 위도 옆도 가려지지 않을 만큼 너무 ‘오픈’된 오픈카를 타고 외진 지역을 통과하는 것은, 그러다가 결국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어 총을 맞고 쓰러져버리는 것은 대체 무슨 연유란 말인가. 아폴로 로버에 대한 오마주일 것이라는 추정 말고는 달리 답을 찾기 어렵다.

뉴 스페이스 시대의 절정에 이를 때쯤엔 우리나라 기업에서 만든 수소전지 로버가 달 표면을 돌아다닐지도, 달까지 며칠 만에 물품을 옮겨준다는 초고속 우주 택배 서비스가 유행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이윤에 눈이 먼 일부 기업은 노동자에게 보름 동안 이어지는 달의 낮 동안 쉬지 않고 업무를 하라고 강요하거나, 어느 나라에도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한 회피처로 우주를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우주도 꽤 낯익은 공간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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