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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국 프리즘] ‘라떼’는 소떼 1001마리를 기억할까?

등록 2021-07-27 14:21수정 2021-08-24 18:40

박수혁  ㅣ 전국팀 기자

지난 12일 금강산관광 중단 13년을 맞아 남북경협기업인들이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통일전망대에 모였다. 1998년 시작된 금강산관광은 2008년 7월11일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 전면 중단됐다. 기자회견 중 금강산관광 재개를 촉구하는 한 기업인이 손팻말을 들었다. “한때는 통일전령사! 지금은 신용불량자!”라는 문구가 기억에 남았다.

그날 저녁 중학교 2학년인 딸에게 “네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차 타고 북한에 관광하러 다닐 수 있었다”며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했다. 딸아이는 놀란 기색도 없이 “알아, 금강산관광이지?”라고 응수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진짜? 정말이야? 거짓말이지! 북한에 어떻게 놀러 가? 아빠는 가봤어? 나도 가고 싶다” 등의 반응을 기대했던 나는 흠칫 놀랐다. 딸아이는 “유튜브에서 금강산관광 갔다가 총 맞았다는 얘기 들었어. 아니 학교에서 배웠나? 아무튼…”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옆에 있던 아내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2008년에 중단됐다”는 나의 설명에 “딸아이가 태어난(2007년) 뒤로도 몇년은 더 했던 것 같은데”라며 아는 체를 하는 것이다. 즉시 나는 ‘5만원 내기’를 제안하며 아내를 도발했고, 아내는 한발 물러서는 듯하다가 “적어도 2008년은 아니다”라며 맞받아쳤다.

보통 이럴 땐 인터넷 검색에 능통한 딸아이가 ‘판결’을 한다. 하지만 이날은 1분이 지나도록 답을 내놓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딸아이의 핸드폰을 뺏어 검색창을 보니, “금광산관광”이 적혀 있었다. 어이가 없어 “금광산이 뭐야”라고 나무라자, 딸아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금광이 많아 금광산 아냐?”라고 말해 온 가족이 한바탕 웃었다.

어물쩍거리는 아내의 지갑에서 재빠르게 5만원을 꺼내 든 나는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때 당신은 왜 금강산관광을 가지 않았냐”고 한마디 건넸다. 졸지에 5만원을 강탈당한 아내는 “이렇게 빨리 끝날 줄 알았나”라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다녀올걸”이라며 아쉬움의 말도 덧붙였다.

나도 금강산을 가보지 못했다. 관광이 시작된 1998년 하반기에는 군대에서 갓 제대한 복학생으로, 또 취업준비생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2008년에는 기자 초년생이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취재 지시에 ‘금강산관광이라도 가볼까’라고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모두 잠이 든 뒤 문득 금강산관광이 궁금해졌다.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재생하자 칠순이 넘은 할머니가 북한 땅을 밟자마자 애타게 ‘어머니’를 외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북한 땅에 피붙이 하나 없는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27일 오전 10시부터 남북이 그동안 단절됐던 통신연락선을 복원하기로 했다. 남북이 그동안 멈춰선 대화를 재개할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긍정적인 신호는 계속 있었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공동성명을 통해 ‘남북 대화·관여·협력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통일부는 금강산 개별관광뿐 아니라 대한골프협회와 2025년 세계골프선수권대회 금강산 유치도 추진하고 있다. 강원도도 북한과 2024강원겨울청소년올림픽 공동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

2019년 10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금강산 시찰 과정에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쪽 시설을 싹 들어내도록 하라”고 지시하는 등 위기감이 고조된 이전과는 변화된 분위기다.

정주영 회장은 금강산관광을 성사시킨 ‘소떼 방북’ 당시 1000마리가 아니라 1001마리를 북한에 보냈다. 1000은 끝이 될 수 있지만, 1001은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골프대회든, 개별관광이든, 청소년올림픽이든 소떼 방북과 같은 ‘파격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 적어도 남북관계 분야에선 “이봐, 해봤어?”로 대표되는 정 회장의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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