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석|문화비평가
요즘 재미있는 인력 시장이 눈에 뜨인다. 사람들에게 안 쓰는 물품을 사고팔라고 만든 플랫폼에 ‘이거 사세요’가 아니라 ‘가르쳐 드릴게요’라는 게시물들이 올라온다. “성인 왕초보 자전거, 아직 늦지 않았어요.” “전동공구 쓰는 법, 깔끔하게 1시간에.” “화분 들고 만나요. 분갈이 무료로 알려드려요.” 반대로 이런 요청들도 있다. “기타 딱 한 곡만 치게 해주세요.” “초등학생 농구, 친구들과 놀 정도만 가르쳐주세요.” 나의 즐거움을 남에게 퍼뜨리는, 소소하지만 정겨운 배움의 벼룩시장이다.
예전에 스윙댄스를 즐기는 외국인 친구들을 만났다. 원래 각자의 나라에서 춤을 즐겼는데, 한국 춤 문화가 궁금해서 찾아왔다고 한다. 뭐가 궁금해? 국제 행사에 나오는 한국 댄서들의 수가 갑자기 늘었고, 실력도 놀랍도록 빨리 성장하더라는 거다. 이유를 알아냈냐고 했더니 입을 모았다. 한국인들이 뭐든 빨리빨리 열심히 배운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특히 부러운 건 ‘동호회’라고 했다. 자기들 나라에선 영화 <쉘 위 댄스>처럼 춤을 교습소에서 배우는 경우가 많은데, 체계적이고 전문적이지만 비싸기도 하고 틀에 박힌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한국에선 동호회 선배들에게 쉽고 싸게 배울 수 있다는 거다.
생각해보니 나도 잡다한 취미를 즐기며, 그런 선배들의 도움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나도 초보를 살짝 지난 상태에서 입문자들을 가르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항상 아름다웠던 건 아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엉터리 선배에게 기타를 배워 그 버릇을 빼는 것보다 손가락을 새로 다는 게 낫겠다는 말도 들었다. 반대로 호기롭게 강사로 나섰다가, 첫 질문에 대답을 못 해 호흡 곤란을 겪기도 했다.
동호회 강사는 보통 이렇게 시작한다. 같이 배운 동기들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친구에게 선배가 말한다. “다음 기수는 네가 가르쳐봐.” 입가가 씰룩거린다. 내 실력을 인정해주는 거잖아. 후배들에게 으스댈 수도 있고, 인기를 얻으면 전문 강사로 나설 수 있을지 몰라. 그러곤 첫 수업에 좌절한다. 아, 정신 차리자. 두번째 수업에 절망한다. 괜히 시작했어. 그냥 배울 때가 행복했어.
뭐든 쉽게 익히는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이 있다. “그냥 따라 하면 되는데, 왜 안 하세요?” 그걸 못하니까 동호회에 오고, 비슷한 실력의 초보들과 같이 배우려는 거다. 요즘은 유튜브 강의도 많아 재능 있는 친구들은 혼자 영상을 보고도 척척 익힌다. 오히려 초보들을 잘 가르치는 사람들은, 배움이 더뎌서 천천히 오래도록 여러 방법을 시도해본 사람들인 경우도 많다. 물론 가장 좋은 강사는 재능도 뛰어나고 경험도 많아 사람들의 부족한 점을 쏙쏙 파악해 알려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동호회에서 값싼 강사로 쓰면 안 된다.
예전에 60대 은퇴자들에게 보드게임을 가르친 적이 있다. 초등학생이나 외국인보다 어려웠다. 눈이 나빠 카드도 구별 못 하고, 10분 전에 말한 규칙도 잊어먹고, 잘못된 플레이를 지적하면 삐지기도 잘하셨다. 하지만 강사로서는 아주 흥미로웠다. 이런 극강의 초보들을 가르쳐낸다면, 이젠 어떤 학생도 두렵지 않을 거야. 그분들이 최근에 연락을 했다. “드라마 <퀸스 갬빗> 보니까 체스가 멋있던데, 그거 가르쳐주면 안 돼요?” 아직 고민하고 있다. 체스는 실력의 등급이 뚜렷하고, 나는 규칙만 아는 수준이다. 하지만 저분들을 가르치는 데는 오히려 딱 맞는 수준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왕초보를 가르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딱 하나만 해도 성공하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걸 그들도 좋아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건 가능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