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언론 줄 세우기가 더욱 노골화될 것.” “언론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8일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종이신문 판매 부수를 인증해주는 에이비시(ABC)를 ‘퇴출’ 조치하는 대신 새 제도를 만들겠다고 발표하자, 여러 언론이 ‘우려’의 쓴소리를 쏟아냈습니다. 저는 미디어 담당 기자로서 8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문체부 발표 현장에 있었습니다. 저 역시 문체부 발표를 들으며 대체 지표와 관련해 일부 허술한 대목이 염려됐지만, 그보다 에이비시 이슈를 둘러싼 언론의 ‘자사 이기주의’적 보도 행태가 더 눈에 밟혔습니다.
에이비시는 정부가 신문사와 광고계약을 맺거나 지원금을 배분할 때 활용된다는 점에서, ‘언론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문제를 어떻게 보도해야 하는가’와 연결되는 이슈입니다. 또 지난해 11월 한국에이비시협회 내부고발자 폭로와 이후 문체부 사무검사 결과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등 전국 종합일간지의 ‘부수 부풀리기’ 정황이 드러나, ‘언론이 언론을 취재’해야 하는 미디어 이슈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의혹의 당사자이자 해결의 핵심 역할을 해야 할 한국에이비시협회, 그리고 협회 이사진으로 참여한 신문업계에 대한 취재·보도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취재가 미비한 상태에서 비판의 화살을 정부로만 조준하려니, 팩트와 맥락을 왜곡하는 보도가 나오기 쉬웠을 겁니다. 대표적으로, 일부 언론은 문체부의 ‘사무검사’ 조처를 왜곡했습니다. 이름도 생소한 ‘사무검사’는, 문체부가 민법 제37조 ‘소관 법인에 대한 검사·감독권’에 근거해 실시하는 조사입니다. 협회는 비정부 사단법인으로서, 정부가 강제로 운영에 개입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몇몇 언론사는 보도자료로 제시된 용어조차 헷갈려 ‘검사’가 아닌 ‘감사’라는 표현을 기사 제목·본문에 혼용해서 쓰기도 했는데요. 언론이 협회와 정부의 관계 설정 및 과거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음을 드러내는 단서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에이비시협회에 권고한 제도개선 조치사항에 대해 최종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신문이 “협회의 업무 처리가 문제라면 협회의 인력이나 시스템을 바로잡는 게 먼저라는 비판도 있다”고 쓴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신문은 협회 인력·시스템을 바로잡을 ‘주어’를 불분명하게 처리해서, 마치 정부가 에이비시 퇴출 결정 전에 이런 노력을 해야 했다는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사무검사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또한 문체부는 2018년 이번 사태의 주요 책임자에 포함되는 현 이성준 에이비시협회 회장의 연임을 우려하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에이비시 신뢰 문제는 내부고발 이전에도 협회 안에서 꾸준히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한겨레>가 입수한 2018년 협회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중앙일보> 소속 이사는 “‘조중동’의 신문종이 사용량이 21% 감소했는데, 에이비시 유료부수는 11%만 감소했다. 종이를 안 썼는데도 에이비시 부수로 카운팅(집계)된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조사의 한계를 인정하고 조사 방법에 대한 중지를 모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협회 수뇌부, 협회 이사로 참여하는 유력 신문사 판매국장 일부는 이러한 내부 문제 제기는 물론, 문체부의 사무검사 결과에 따른 개선 ‘권고’ 사항들에도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일부 언론은 문체부의 신문지국 현장조사의 정확성을 문제 삼는 협회의 주장만 인용했습니다. 하지만 문체부는 지난 3월 사무검사 결과를 발표하며 “(강제권한이 없는) 사무검사의 성격 및 표본의 한계”를 명확히 밝히고, 협회와 공동조사단을 꾸려 추가 현장조사를 하자고 권고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추가 조사 제안에 석달 동안 비협조적으로 대응한 건 협회와 신문업계 쪽이었습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3월 문체부 사무검사 결과 발표를 보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문체부가 협회의 자발적 개선을 유도하는 동안, 협회는 ‘내부고발자 흠집 내기’에 몰두하고 일부 신문은 ‘대선을 앞둔 정부·여당의 정치적 계산’이라고만 문제 삼았습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에이비시협회에 권고한 제도개선 조치사항에 대해 최종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부처,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이 에이비시를 참조해 집행한 정부광고 규모는 한해 2452억원(2020년 기준)에 이르며,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에이비시를 참조해 언론에 지원한 금액은 34억원입니다. 정부가 자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지표를 대책 없이 계속 활용한다면, 더 큰 비판에 직면하지 않았을까요?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정부광고 집행과 정부의 언론 지원은 별개의 영역이다. 정부광고를 위한 대안 지표를 언론 지원에 똑같이 쓰는 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문체부가 두 영역을 명확한 구분 없이 발표하면서 혼란과 비판의 빌미를 준 것 같다”면서도, 언론사들의 ‘자사 이기주의’적 보도 행태를 비판했습니다. “정부광고는 언론의 ‘권리’가 아니”라는 겁니다. 에이비시를 둘러싼 언론 보도의 문제점은 신문광고가 광고 효과보다 ‘보험성’으로 이뤄지는 기형적 시장의 문제가 투영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한겨레>라고 에이비시 보도를 잘한 건 아닙니다. 지난 3월 문체부의 협회 사무검사 결과 발표 당시 회사 명의로 사과문을 내긴 했지만, 취재도 자기 성찰도 부족했습니다. 고 김세은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한국 언론이 “동업자 의식에서 비롯된 자기 식구 감싸기”와 “진영논리 속에 갇힌” 미디어 보도·비평을 모두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누가 감시견(watchdog)을 감시할 것인가?” 김 교수가 던진 질문에 이미 답이 있습니다. 언론 자유를 제대로 지키려면, 언론 스스로 언론권력을 감시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