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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자유민주주의 좌파’를 위하여 / 이세영

등록 2021-07-13 15:24수정 2021-07-14 02:40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 / 캔버스에 유화)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 / 캔버스에 유화)

이세영|논설위원

“(사노맹에서) 사상 전향을 했나?”(김진태 청문위원)

“사적인 연으로 그 활동에 관련된 건 사실이지만, 대한민국 헌법을 존중했다.”(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회주의자 활동과 대한민국 헌법을 존중한다는 게 어떻게 양립할 수 있나?”(김진태)

“모순되지 않는다. (나는)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사회주의자다.”(조국)

거짓 해명과 내로남불 논란에 묻히긴 했어도, 2019년 9월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의 사상공세에 조국 후보자가 취한 대응은 의연했다. 불리하게 작용할지 모를 급진적 사상 이력을 애써 부인하지 않은 것도 예상 밖 초식이었지만, 자신의 이념 정체성을 ‘자유주의적 사회주의’라 공개 표명한 대목은 그의 삶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에게조차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예상대로 보수는 그의 고백을 ‘궤변’이라 공격했다. 이념적 상극인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어떻게 한 사람의 세계관에 공존할 수 있느냐는, 지극히 평면적인 상식에 근거한 반응이었다.

이제는 누구도 거론하지 않는 2년 전 청문회 발언을 다시 떠올린 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정치 참여를 선언하며 내건 ‘자유민주주의’ 때문이다. 그는 선언문에서 “이 정권은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 한다.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독재요 전제”라고 날을 세웠다. 혹시 모를 그의 ‘확장력’에 경계심을 품었던 이들은 “기껏 들고나온 게 자유민주주의냐?” “숨겨온 우파 본색을 드러냈다”고 안도했다. 윤석열의 자유민주주의를 20세기 냉전적 자유주의의 연장으로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정치 참여 선언 뒤 윤석열이 걸어온 행보는 우파색이 뚜렷하다. 이재명의 ‘미 점령군’ 발언을 ‘국가 정통성에 대한 부정’으로까지 연결지으며 보수의 이념공세에 숟가락을 얹은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최근 도드라진 몇가지 언행을 근거로 윤석열의 자유민주주의에 ‘시장 우파’나 ‘반공 우파’의 꼬리표를 붙이려 드는 건 성급해 보인다.

애초 자유민주주의는 법의 지배와 권력분립, 개인의 자유 보장을 핵심 원리로 삼는 자유주의와, 평등과 인민주권이 기본 원리인 민주주의가 결합해 만들어진 정치 레짐이다. 절대주의에 맞서 자유주의자와 민주주의자가 함께 투쟁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이 정체는 지난 세기 좌·우익 전체주의와의 대결에서 모두 승리하면서 지구적 차원의 지배 정체로 자리잡았다. 더이상 반공주의나 시장지상주의라는 협소한 경계 안에 가둬두는 게 불가능할 만큼 정치적 의미 지평이 확장된 것이다.

윤석열의 자유민주주의가 극우에서 진보층 일부까지 포괄하는 폭넓은 유권자층에 호소력을 발휘한다는 사실 역시 눈여겨봐야 한다. 그 담론적 위력의 상당 부분은 문재인 정부의 민주주의가 법치, 견제와 균형, 개인의 자유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들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대중의 막연한 공통 감각에 근거하는데, 여기엔 검찰개혁, 의회 운영, 선거관리 같은 민감한 이슈에서 집권세력이 보인 미숙하고 성급한 대처가 빌미를 준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의 자유민주주의는 ‘보수 결집’만을 노린 고루한 우파 이념이 아니라, 대중의 불만과 요구를 하나의 전선으로 결집시키기 위한 다수파 전략의 깃발이자 상징, 헤게모니적 기표에 가깝다.

윤석열식 자유민주주의를 앞세운 보수의 헤게모니 프로젝트 앞에서 진보와 리버럴이 선택 가능한 대안은 하나로 수렴된다. 자유(민주)주의를 자신의 것으로 전유하기 위한 사고와 행동 패턴의 전환. 서구 좌파는 이미 자유민주주의를 자신들의 대안적 정체 안에 포용한 지 오래다. 조국이 언급한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역시 1970년대 마르크스주의 국가론 논쟁의 주역이었던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노르베르토 보비오(1909~2004)의 것이다. 보비오는 사회주의의 목표를 ‘자유민주주의 가치의 심화’로 정의하면서 보편적 자유, 권력분립, 대의제를 사회주의가 방기해선 안 될 핵심 원칙들로 제시했다. 이 원칙들은 대부분의 좌파 정당들에 의해 명시적·암묵적으로 수용됐다.

이런 점에서 몇해 전 진보와 리버럴 세력 일부가 중등 교과서에 나온 ‘자유민주주의’란 표현을 ‘민주주의’로 대체하려 한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냉정히 말해, 지금, 자유민주주의의 바깥은 없다. 진보의 임무는 ‘모두를 위한 자유와 평등’이란 자유민주주의의 윤리와 원칙을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것이다.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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