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헌 경제팀장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2년 동안 한 주도 쉬지 않고 올랐다. 105주 내리 상승세다. 수도권 전체나 전국 기준으로도 상승 흐름은 마찬가지다. 지난해보다 올해 아파트값 오름폭이 더 가파른 상황에서 전셋값마저 고공행진이니 무주택자로서는 진퇴양난이다.
왜 이렇게 오르는 걸까. 보수 언론과 전문가들은 지난해 8월 도입한 새 임대차법과 집주인 실거주를 유도한 각종 규제 조처를 원인으로 꼽는다. 임차인에게 한차례 계약갱신청구권을 부여하고 계약갱신 시 임차료 상승률을 5%로 제한한 새 임대차법으로 인해 전세 공급이 감소하자 신규 전세 가격이 상승했다는 논리다. 하지만 기존 세입자가 2년 더 살기로 해 공급이 줄었다면, 계약을 갱신한 세입자만큼 수요도 감소해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다. 집주인 실거주 문제도 그렇다. 집주인이 살던 집을 비우고 자기 소유 주택으로 옮기므로 임대 공급이 줄지는 않는다. 물론 이런 규제들이 특정 지역이나 특정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국지적·단기적 수급 불균형 요인이 될 수는 있겠지만, 시장 전체 차원에서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중립’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진짜 원인은 뭘까. 답은 ‘금리’다. 전세의 속성을 살펴보면 이해가 된다. 전세는 세입자가 전세보증금만큼의 금액을 집주인에게 무이자로 빌려주는 대가로 일정 기간 거주하는 제도다. 따라서 세입자가 대출로 보증금을 마련했을 경우 대출 이자가 전세의 주거비용이다. 세입자 본인 돈이라면 기회비용을 임차의 대가로 지불했다고 볼 수 있다. 기회비용도 금리에 영향을 받으므로 결국 금리 수준에 따라 전세 세입자의 주거비가 결정된다.
5억원이던 아파트의 전셋값이 7억원으로 올랐는데, 그사이 대출 금리가 연 4%에서 2%로 떨어진 사례를 보자. 보증금 전액을 대출로 조달한다고 가정하면, 전셋값은 2억원(40%) 상승했지만 연 2000만원이던 세입자의 주거비용(대출이자)은 1400만원으로 30%나 줄어든다. 금리 하락으로 ‘명목 전셋값’과 ‘실질 주거비용’이 반대로 움직인 것이다. 이 사례의 경우 전셋값이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오르면 세입자의 주거비용이 똑같이 유지된다. 따라서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금리의 가격 결정 메커니즘에 따라 수급이 영향을 받아 전셋값이 2배가 되는 게 자연스럽다. 즉 ‘전셋값은 금리의 함수’인 셈이다. 일시적 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노이즈는 생길 수 있지만, 전셋값의 큰 흐름은 금리 방향에 수렴한다는 얘기다.
실제 전셋값 추세는 기준금리의 궤적을 따라간 것으로 확인된다. 한국은행은 2019년 7월과 10월 기준금리를 인하한 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을 위해 두차례 더 금리를 내렸다. 이에 불과 2년 전 연 1.75%이던 기준금리는 현재 0.5%로 곤두박질쳤다. 월간 기준 서울 전셋값은 2019년 8월, 전국 전셋값은 그해 10월 오름세로 전환한 뒤 현재까지 상승세를 이어왔다. 금리를 놓고 보면, 새 임대차법 도입 직후인 지난해 하반기 전셋값 급등 배경도 설명이 가능하다. 그해 3월과 5월에 걸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나 내린 게 시차를 두고 전셋값을 밀어 올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다. 물론 새 임대차법으로 인해 2년 뒤 전셋값 인상에 제한을 받게 된 집주인들이 신규 세입자를 들일 때 한꺼번에 올려 받으려 한 게 영향을 줬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가격 올리기도 금리 하락으로 인한 전세 시세 상승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실질 주거비용 부담이 늘어나지 않더라도 명목 전셋값 상승은 경계해야 할 신호다. 전셋값이 집값을 밀어 올리거나, 집값의 하방을 받쳐주는 한국 주택시장의 특성 때문이다. 전셋값을 낮추고 주거비용도 줄일 대책이 있을까. 멸실 없이 신규 주택을 신속하게 대규모로 공급하는 방안이 있겠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집은 ‘빵’이 아니니까. 결국 비용이 들더라도 금리를 올리거나 전세대출을 규제하는 게 현실성 있는 대안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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