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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심채경의 랑데부] 그 학생 “위성의 구덩이를 세는 중이야”

등록 2021-07-08 13:35수정 2021-07-09 02:35

가니메데의 크레이터를 세서, 지난 수십억년 동안 가니메데의 표면에서 일어났던 일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지구 표면에 대해서도 아직 완벽히 알지는 못하지만, 지구로부터 수억 킬로미터 떨어진 가니메데의 충돌구덩이를 세는 천문학자 하나가 존재한다는 것이 때로는 묘한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심채경|천문학자

“가니메데의 크레이터를 세고 있어.”

몇년 전 해외 학회에서 만난 대학원생이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가니메데는 목성 주위를 도는 위성이다. 그는 목성 주위를 도는 위성 가니메데의 지도를 만들었다고 했다. 가니메데는 70개도 넘는 수많은 목성 위성 중에서 가장 클 뿐만 아니라, 태양계 안에서 ‘위성'으로 분류되는 천체 중에서도 단연 가장 덩치가 크다. 가니메데만 집중 탐험한 우주선은 아직 없지만, 목성을 방문하는 우주선이 근처에 간 김에 가니메데도 관측해 지구로 보내온 자료는 조금 있다. 가까이 다가가거나 조금씩 멀어지는 동안 탐사선이 움직이면서 얻은 많지 않은 사진 자료들. 그 학생은 그 자료들을 모자이크해서 지도를 만든다고 했다.

서로 다른 거리와 각도에서 찍은 사진들을 모자이크하려면 각 사진의 밝기와 색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물은 대개 얼핏 보아도 자세히 보아도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사진 조각과 조각 사이의 경계선이 눈에 띄게 도드라지거나 관측자료가 모자라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기 일쑤다. 과학자의 통상적인 업무 범위에는 이음매가 드러나지 않게 매끈하거나 명암의 대비니 색조가 아름다운 지도를 만드는 작업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학생은 관측자료 하나하나마다 촬영 당시 가니메데에 쏟아졌던 태양빛의 양과 입사각, 촬영 당시 탐사선의 상대적 위치 등을 확인하고, 그걸 고려해서 밝기와 색을 변환한다. 기울어진 사진을 위도와 경도에 맞춰 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외양은 얼기설기 기운 누더기 같지만 과학자에게는 소중한 지도가 된다. 지도 속 모든 픽셀이 그 밝기, 그 색을 갖고 있는 근거가 존재한다. 이유를 알지 못하는 픽셀을 보기 좋으라고 주변에 어울리게 다듬는 대신, 완벽하게 알지 못해 완벽하게 보정하지 못한 채로 둔다. 누가 대충 그림판으로 이어붙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그 지도는 과학적으로 아름답다. 물론 대중에게 우주라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도 과학자가 해야 하는 대단히 중요한 일인데, 이때는 디자이너와 같은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멋진 사진이 재탄생한다.

그가 가니메데의 지도를 만드는 것은 충돌구덩이의 크기를 재고 수를 세기 위해서였다. 가니메데에는 대기가 거의 없어서, 운석이 떨어질 때 파인 충돌구가 지구에서보다 오래 남아 있다. 달이나 수성에서처럼 말이다. 충돌구의 크기를 재고 수를 세는 것은 그 땅의 나이를 추정하는 전형적인 방법 중 하나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측정하는 것처럼 절댓값을 얻을 수는 없지만, 면적당 충돌구의 개수를 세는 것으로 상대적으로 어디가 더 오래되었는지를 구별할 수 있다. 세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은 오래된 땅, 과거의 충돌구 흔적은 별로 남아 있지 않고 비교적 최근에 생긴 충돌구만 있는 곳은 더 나중까지 지질작용이 있었던 땅이다. 그러니까 그 대학원생의 일은 가니메데의 지도를 만들고, 크레이터를 세서, 지난 수십억년 동안 가니메데의 표면에서 일어났던 일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는 어쩌면 지구의 땅에 대해서는 잘 모를 것이다. 한때 한반도는 공룡들에게 제법 인기가 많은 핫플레이스였다는 것도, 서해안에는 세계적으로 드물게 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다는 것도, 종로 피맛골에는 몇백년 전의 유적이 묻혀 있다는 것도 잘 모를 것이다. 경남 합천의 초계 분지가 실은 오래전 운석이 충돌해 생긴 구덩이였음은 우리도 최근에야 확인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표면에 대해서도 아직 완벽히 알지는 못하지만, 지구로부터 수억 킬로미터 떨어진 가니메데의 충돌구덩이를 세는 천문학자 하나가 존재한다는 것이 때로는 묘한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가니메데의 표면은 어두운 지역과 밝은 지역으로 나뉜다. 어두운 지역에는 충돌구가 많고, 밝은 곳에는 충돌구가 적다. 왜 그런지는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하고 몇가지 가설이 오간다. 지구에 안착한 유기물질이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오늘날의 우리로 진화하고 변모하는 동안 가니메데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목성의 다른 위성에서는? 같은 시기에 토성이나 화성, 그리고 지구의 위성은 어떤 환경에 놓여 있었을까? 그런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우리 태양계가 어떻게 진화해왔는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가니메데의 충돌구를 세는 천문학자는 태양계의 역사책을 한장 넘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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