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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준만 칼럼] 비판은 ‘소탕’이 아니라 ‘소통’이다

등록 2021-07-05 04:59수정 2021-07-05 08:14

여태까지 거의 모든 선거가 “누가 더 좋은가”가 아니라 “누가 더 나쁜가”라는 기준에 의해 결정돼온 것도 바로 그런 ‘소통의 소탕화’와 무관치 않다. 때는 바야흐로 ‘뉴노멀’의 시대가 아닌가. 반대편을 비판하는 게 비판의 본질이라는 부족주의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같은 편을 비판하는 게 비판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는 ‘비판의 뉴노멀’은 어떨까?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저는 저하고 생각이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일방적인 공격에 대해서는 정말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 직전에 출간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한 말이다. 실제로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 지지자들이 보기엔 담대한 모습이고, 비판자들이 보기엔 둔감한 모습일 게다. 어디 문 대통령만 그렇겠는가. 반대편의 공격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건 정치인의 필수 자질이 되고 말았다.

사회적 참여를 하는 지식인들도 다를 게 없다. 미국 좌파 지식계의 거두인 노엄 촘스키는 “행동하고 싶다면 주변의 소리에 귀를 막아야 한다. 주변의 소리를 무시할 수 있어야 한다.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발언들의 맥락을 살펴보자면 다 그럴 만한 근거를 갖고 한 말임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모두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자세를 가질 때에 소통은 어떻게 가능하며 비판의 목적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그 어떤 비판과 비난에도 견뎌낼 수 있는 ‘멘탈’을 강화하고 ‘맷집’을 키우는 것도 좋겠지만, 그게 공론장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는 게 상식으로 통용되는 세상은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비판은 반대편을 향해 하는 것이라고 보는 비판 모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예컨대, 우리는 진보가 보수를 비판하고 보수가 진보를 비판하는 것이 당연한 동시에 옳다고 생각한다. 그렇듯 진영으로 편을 갈라 양산해내는 비판의 효용은 무엇인가? 어차피 상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거나 귀를 막아버릴 텐데 누구 들으라고 하는 비판인가?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은 구경꾼들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나는 비판의 종류를 크게 두가지로 나눈 바 있다. 단순하고 거칠긴 하지만, “너 죽어라”와 “너 잘돼라”다. 우리는 비판을 “너 죽어라”로 이해한다. 여당이 야당을 비판하거나 야당이 여당을 비판할 때 그 비판을 “너 잘돼라”로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서로 “너 죽어라” 비판을 하다 보면 정치가 갈 길은 뻔하다. 문자 그대로 이전투구가 벌어지기 마련이다. 이대로 좋은가? 좋지 않다! 상대편이 모든 비판을 악의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무슨 변화며 발전이 있겠는가.

오랜 세월 ‘소통의 중재자’로 살아온 토론 진행자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가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는 ‘소통’보다는 ‘소탕’을 지향하는 삶을 살고 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서로 ‘소통’하기는커녕 상대방을 ‘소탕’하려는 분위기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억지로 소통하게 만드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갈등을 해소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도록 유도하는 묘안도 없습니다.”

여태까지 거의 모든 선거가 “누가 더 좋은가”가 아니라 “누가 더 나쁜가”라는 기준에 의해 결정돼온 것도 바로 그런 ‘소통의 소탕화’와 무관치 않다. 구체적인 방법과 묘안이 없는 상황에선 기존의 비판 패러다임을 의심하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다. 때는 바야흐로 ‘뉴노멀’의 시대가 아닌가. 반대편을 비판하는 게 비판의 본질이라는 부족주의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같은 편을 비판하는 게 비판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는 ‘비판의 뉴노멀’은 어떨까?

진보가 진보를, 보수가 보수를 비판하는, 즉 같은 편 내부에서 비판하는 ‘비판의 뉴노멀’이 정립되면 세가지 좋은 점이 있다. 첫째, 비판에서 악의적 요소를 배제할 수 있다. 둘째, 비판 대상에 대한 오해나 무지의 한계를 넘어서 비교적 정교한 비판을 할 수 있다. 셋째, 악의·오해·무지에서 자유로운 비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거나 아예 귀를 막고 무시해버리는 수용 태도에 변화를 가져와 잘못된 것을 교정하는 영향력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진보의 진보 비판에 대한 반발로 나온 ‘어용 지식인·시민 모델’의 신봉자들은 그 몹쓸 과거로 되돌아가잔 말이냐고 펄펄 뛰겠지만, ‘어용 모델’의 공과를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진보의 진보 비판이 안고 있는 문제는 정서적으로 과장된 것이었으며, ‘어용 모델’이 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어용 모델’은 진영의 일사불란한 추진력에 기여하는 장점이 있지만, 오류에 대한 자기교정 기능이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오류를 깨달은 일부 사람들이 뒤늦게나마 자기교정을 시도하려고 해도 이미 강고한 집단적 경로가 형성된 상황에서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소탕’이 아닌 ‘소통’의 자세로 잘 생각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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