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命人) |인권교육연구소 ‘너머’ 대표
우리 집에 있는 가전들은 대개 스무살이 넘었다. ‘집 다 짓고 이사 갈 때까지만 버텨다오’ 싶은 게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옆지기와 새로 살 가전 얘기가 한창이다. 손수 지어 꾸미는 집에 새 물건을 들여놓는 일이다. 때로는 들뜬다. 아직 멀쩡하게 돌아가는 김치냉장고의 나이가 열살이라는 게 자꾸만 걸린다. 기왕이면 새로 살 냉장고와 ‘깔 맞춤’ 하면 좋겠다. 쓰고 있는 유선청소기에 비해 5배 넘는 가격의 무선청소기에 자꾸 눈이 간다. 세탁건조기가 있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던데, 무선청소기도 그럴 것 같다. 속옷을 따로 넣고 동시에 돌릴 수 있다는 트윈세탁기를 보고 나자 갑자기 속옷 위생에 신경이 쓰인다. 10년이나 없이 살았어도 빵도 과자도 구워 먹으며 살았으면서, 서울에 살 때 아파트에 ‘빌트인’으로 딸려 있던 전기오븐이 얼마나 유용했는지가 장황해진다.
그런 와중에 전기 공사를 위해 우리 집에 있는 모든 가전의 소비전력량을 계산해보곤 깜짝 놀랐다. 총량으론 계약전력량 3㎾h를 넘었다. 전기를 적게 쓰는 편이라고 생각했었다. 우리 집엔 그 흔한 티브이도 없고, 에어컨도 없다면서. 그러고 보니 평소엔, 우리 집에서 얼마나 전기를 쓰고 있나가 아니라 남의 집엔 있는데 우리 집엔 없는 것들을 주로 따졌다. 오븐을 사놓고도 장식용으로밖에 안 쓰는 사람들, ‘에어프라이어’나 ‘착즙기’ 같은 새로운 가전이 나오면 득달같이 사면서 몇번 쓰고 처박아 두는 사람들, 괜스레 남을 흉보면서 위안 삼았던 게다. 모든 가전을 동시에 사용하는 게 아니니까 안전에 크게 문제 될 건 없지만, 집에 있는 가전을 전부 나열해 그 목록을 시각적으로 확인하면서 그 가전들의 소비전력량, 그리고 분전된 콘센트의 공급전력량을 따져보는 일은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이제, ‘더 편리하게, 더 다양하게, 더 많이 소비하라’는 이 시대의 지상 명령이 되었다. 필수 가전을 제외하고도 공기청정기에 이어 의류 스타일러, 정수기, 가습기, 전동칫솔에 구강세정기, 칫솔살균기, 식품건조기, 식기세척기, 토스터, 전기포트, 제빵기에 와플기, 전기난로에 전기장판에 데스크톱 컴퓨터, 노트북, 태블릿 피시, 그리고 온갖 ‘스마트’한 것들….
‘핵발전소 찬성론’은 차치하고라도, 혹자는 ‘재생 에너지’가 답이라고 한다. 덕분에 산들은 무자비하게 깎여나갔고, 현 정부 출범 이후에만 여의도 면적 20배의 산이 태양광 발전 시설로 뒤덮였단다. 태양광으로 인한 산림훼손을 문제 삼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이번엔 바다와 농토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들이민다. 업자들은 ‘힘들게 농사짓기보다 태양광 발전이 돈이 된다’며 농민들을 꾀다 못해 ‘둘레 논들은 전부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기로 했으니 그 속에서 농사를 짓든 말든 맘대로 하라’며 대놓고 위협까지 한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식량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 사료용 수요를 고려한 국내 곡물자급률이 21%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나라에서 말이다. 시대의 지상 명령에 따라 전기를 펑펑 쓰더라도 재생에너지는 ‘대안’일까? ‘스마트’와 ‘그린’은 정말로 양립 가능할까?
혹자는 에너지 문제에서 개인의 실천을 강조하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국가와 기업이 져야 할 에너지 문제와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겨선 안 된다고. 내 생각도 그렇다. 그런데 얼마 전 이런 문구를 보았다. ‘디지털 혁신의 아이러니는 기술이 아니라 문화와 사람에 관한 것이다.’ 나는 다시 생각한다. 나의 인식 체계와 우리의 문화, 즉 우리 자신의 변화에 대해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면 정말로 충분하겠는가 하고. 날마다 새로운 소비자로 거듭나는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의 정치적 책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