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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미모에 대한 다른 해석

등록 2021-07-02 16:26수정 2021-07-03 15:27

장레옹 제롬, <법정에 선 프리네>, 1861, 캔버스에 유채, 80×128㎝, Kunsthalle, Hamburg.
장레옹 제롬, <법정에 선 프리네>, 1861, 캔버스에 유채, 80×128㎝, Kunsthalle, Hamburg.

이주은ㅣ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미모 때문에 죽을 위기에 처했다가 미모 덕분에 목숨을 건진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프리네, 기원전 4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헤타이라’이다. 헤타이라란 가무와 연극에 능하고 철학과 예술을 논할 수 있는 사교계의 여인을 말한다. 프리네는 정치가나 장군의 비공식적인 파트너로 동행하여 모임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했는데, 한번은 뛰어난 미모로 인해 불행한 일을 겪게 되었다. 어느 고관대작의 은밀한 요청을 거절한 것이 화근이 되어 비열한 보복을 당한 것이다.

고관대작은 프리네가 신전에서 공연할 때 반라로 춤을 춘 것을 교묘하게 모함하여 당시 최고 무거운 죄인 신성모독죄를 씌웠고, 그녀는 곧 사형을 받게 될 처지였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아카데미 스타일을 대표하는 장레옹 제롬의 그림 중에 <법정에 선 프리네>가 있다.

변호를 맡은 히페레이데스가 열변을 토했지만, 프리네의 유죄 쪽에 기울어져 있던 재판관들의 생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말의 논리로 설득이 불가하다는 것을 깨달은 히페레이데스는 갑자기 프리네의 허리끈을 풀고 가운을 휙 벗겨 나체로 만들어버렸다. “직접 보세요. 신성모독이 가능하기나 합니까? 그녀 자체가 조각으로 빚은 여신상입니다. 꼭 죽여야 속이 시원하겠습니까?”

히페레이데스의 유창한 변론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재판관들은 우유에 진주가 섞여 광을 내는 듯한 그녀의 몸을 직접 보고 나서 모두 멍하니 넋을 잃고 말았다. 그들은 만장일치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저 완벽한 아름다움은 신의 의지로 받아들여야 한다. 신의 의지 앞에서 사람이 만들어낸 법은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러므로 무죄이다.”

최고의 지성인들이 다 모여 이런 판결을 내렸다니 믿을 수가 없다. 언뜻 ‘프리네는 예쁘고, 예쁘면 다 용서된다’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렇게 즉물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프리네가 의인화하고 있는 것은 ‘예술’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예술의 가치를 판단하는 근거는 법의 잣대와 일치할 수 없다는 차원에서다.

제롬이 이 그림을 내놓은 때는 1861년인데, 당시 프랑스 왕립 미술교육기관인 아카데미에서는 학생들의 자유로운 감성 표현에 대해 완고하게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학생들은 미술적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경직된 교육지침에 반항했고, 미술이 정치와 도덕의 시녀가 아님을 주장했다. 제롬의 경우는 아카데미에 순응하는 화가였지만 미술 해방의 대세에는 심적으로 동조한 듯 그림 속에서 프리네라는 인물을 앞세워 의견을 펼친다.

결국 이런 변화의 분위기 속에서 미술교육과 미술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아카데미는 위기를 맞았다. 이후 미술가의 개성 표현이 점차 자유로워지면서 미가 이야기되는 범위도 확대되었다. 미술이 사회가 추구하는 진선미의 주제만을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사물의 이면과 그림자까지 다루게 된 것이다.

오늘날 미술 전시장에 가면 미술 작품이라는 명목으로 일그러지고 구겨진 인물, 오물을 끼얹는 비디오, 썩어가는 재료, 그리고 쓸모없어진 기계의 파편 같은 것들이 늘어서 있을 때가 있다. 한때 예찬의 대상이었던 것이 다른 맥락에 처하면 끔찍하고 두려운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감추고 싶은 존재들이 버젓이 모습을 드러내는 그 시점부터 우리는 현대미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본다. 미술의 가치를 평가 내리는 기준이 획일적이지 않기 때문에, 어떤 것이 왜 괜찮은 작품인지 말로 설명하기 한층 어려워진 셈이다. 요즘엔 정치도 현대미술을 닮아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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