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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탈탄소 비용과 오염자 부담 원칙 / 이종규

등록 2021-06-23 14:56수정 2021-06-23 19:08

“화석연료 업체 로비의 승리다.” 지난 13일(현지시각) 스위스에서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 법안’(탄소법) 개정안이 부결되자, 스위스 녹색당은 성명을 내어 “이번 투표 결과가 기후위기 대응을 현저하게 지연시킬 것”이라며 이렇게 비판했다. 현지 인터넷 매체 <스위스인포>의 보도를 보면, 탄소법 개정안은 ‘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라 이산화탄소 배출에 책임이 있는 이들에게 추가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항공권에 부담금을 물리고, 휘발유와 경유 등 화석연료의 세금을 인상하는 게 핵심이다. 이 법안은 3년에 걸친 토론 끝에 지난해 9월 의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화석연료와 운송, 항공업계를 비롯해 반대하는 쪽의 요구로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여론조사에서 한때 60%가 넘는 지지를 받았으나, 점차 격차가 줄어 근소한 차이로 부결됐다.(찬성 48.4%, 반대 51.6%)

스위스의 국민투표 결과는 ‘탄소 중립’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스위스는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따라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1990년 대비 절반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스위스 정부 누리집 자료와 <스위스인포> 기사들을 보면, 스위스에는 이미 기후변화의 명백한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알프스 빙하가 녹고 있으며, 폭염과 가뭄이 더 잦아지고 홍수와 산사태 같은 자연재해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정부와 의회가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탄소법 개정안을 마련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법안은 우파인 ‘국민의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의 지지를 받았으나, 결국 국민투표의 벽을 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들이 반대로 돌아선 데에는 재계가 설파한 ‘경제 논리’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국민투표 과정에서 스위스 재계는 탄소법 개정안이 기업과 가계에 큰 부담을 지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4인 가족 기준으로 연간 1000프랑(약 120만원) 정도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는 추정도 내놓았다. 사람들에게 ‘본전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세금 폭탄론’의 위세는 나라를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지난 4월 자료를 내어 “탄소세가 부과되면 기업에 최대 36조원의 추가 부담이 예상된다”며 도입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탄소 배출에 세금을 매기는 탄소세법을 대표발의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기후위기 대응에는 비용이 든다. 탄소에 기반한 경제·사회 시스템을 확 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탄소세를 시행하는 나라가 20여곳이 넘고, 유럽연합(EU)과 미국은 ‘탄소 국경세’ 도입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더욱이 한국은 스위스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15배가량 많다. 탈탄소 전환 비용이 더 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는 ‘공평한 책임 분담’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이종규 논설위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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