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희 |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쉽게 잊어버려 주기적 복습이 필요한 영역이 있다. 차별이 그렇다. ‘사람은 평등하고 차별하면 안 된다’는 당위를 쉽게 잊는다. 긴장을 늦추면 무의식 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차별이 드러나고 만다. 이미 내뱉은 말이나 전송해버린 메시지 속에서 차별 표현을 발견하고 반성을 거듭하며 든 생각이다. 차별하지 않으려면 뻔히 알고 있는 것도 복습이 필요하다. 지역 차별 언어도 그 가운데 하나다.
최근 화이자 백신 도입 건으로 대구가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백신 구매를 추진한 시와 지역의료단체뿐만 아니라 지역 전체가 도맷금으로 욕을 먹는 중이다. 많은 이들이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파악하지 않은 미숙함을 꾸짖는다. 진행 과정을 명확히 하고 책임을 가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특정 정당에 편향되지 말고 지도자를 제대로 뽑으라고 따끔하게 충고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추진과정을 볼 때 대구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지역사회에서도 청년들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백신 도입 논란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건강한 비판은 여기까지다.
문제는 이 사건을 두고 쏟아지는 지역 차별과 혐오다. ‘역시 대구스럽다’ ‘대구 시민들 생각 좀 합시다’ ‘대구·경북은 백신 주지 말고 알아서 구해오게 하자’ ‘대구는 독립시켜라’ 등 관련 기사마다 조롱과 비난 댓글이 따라붙는다. 비단 대구뿐만 아니라 어느 지역에서든 부정적인 사건이 터지면 예외 없이 시빗거리로 삼아 지역 혐오를 쏟아낸다.
지역 차별 언어는 국어사전에 실려 있을 만큼 뿌리가 깊다. ‘○○○ 핫바지’ ‘촌놈’ 등의 표현은 부정적 의미의 놀림조로 쓰이긴 했지만, 증오나 혐오까지 담지는 않았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혐오의 감정이 투사된 험한 표현이 늘고 있다. 개인적인 정치적 올바름의 잣대로 특정 지역이 틀렸다고 단정하고 이를 빌미로 혐오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그 수위가 점점 올라가 글로 옮기기조차 섬뜩한 말들이 흔히 오간다.
이정복 대구대 교수는 ‘한국어와 한국 사회의 혐오, 차별 표현’(국립국어원, 2017)에서 “차별 표현들은 사람들의 대립과 갈등에서 나온 것이지만 일단 만들어진 이후에는 거꾸로 대립과 갈등을 심하게 부추기는 수단으로 쓰인다. … 화자들이 차별적임을 모르는 경우가 많고, 비유적으로 쓰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점에서 차별 표현 인식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일상에서 무심코 지역을 차별하는 말을 하고, 그 말들이 갈등을 부추겨 결국엔 혐오 표현으로까지 번지는 중이다. 우리는 이미 한참 전부터 혐오 표현이 다시 지역 차별로 이어지는 악순환 속에 있다. 익명이 보장된 비대면 공간의 확장은 혐오 표현의 전파에 가속도를 붙인다.
이런 때 희망제작소가 진행 중인 ‘지역차별언어 바꾸기 프로젝트’가 눈에 들어왔다. 설문을 통해 지역을 차별하는 언어를 모아보고 새로운 언어 대안을 찾아보려는 움직임이다. 설문에 응답해보았다. ‘서울말 잘하네, 이제 서울 사람 같다’ ‘연휴에 본가 간다고? 시골 잘 다녀와’ 같은 말들을 예시로 주고 차별 경험을 물었다. 울컥하는 감정까지 담아 단숨에 답했다. 반면 대안을 제시해보라는 요구에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지역을 차별하는 말에는 발끈하면서도 새로운 말로 바꿔보려는 노력은 해본 적이 없었던 탓이다. 희망제작소는 ‘어디 사람’이 아닌 ‘어떤 사람’인지를 물어보는 우리가 되도록 경험을 나눠보자고 제안한다. 지역 차별에 맞서 어떤 대안 언어들이 나올지 궁금하다.
‘사람은 소우주’라 할 만큼 복잡한데 나고 자란 곳이나 사는 곳에 따라 무리 짓는 건 그 자체로 오류다. 실수로라도 지역을 차별하는 언어를 쓰지 않으려면 복습을 게을리할 수 없다.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낼 ‘차별금지법’이 든든한 뒷배가 될 날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