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전경원 ㅣ 경기도 교육정책자문관
“저는 서울 목동에서 자랐습니다. 친구들 대부분이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어요. 같은 학원에 다녔고, 똑같이 교육열이 대단했어요. 저를 포함해 중학생 아이들 700명이 등수를 다퉜어요. 좀 잔인한 측면도 있지만 그래도 저는 그 시절의 공부가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과학고에 진학했고, 졸업 후 미국 하버드대학에 합격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었지요.”
“제가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해보지 못한 이유는 겸손한 사람으로 태어나서가 아니에요. 저는 과학고 출신이 아니고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 출신입니다.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했고, 20대에 판사가 됐어요.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학위를 받았습니다. 법원행정처 요직인 기획심의관 발령도 받았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 우수 법관으로 선정됐습니다. 그러함에도 제가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으로 승자가 됐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습니다.”
“지나친 겸손인가요? 아니면 자신감 부족인가요?”
“말씀드렸듯 제가 겸손해서가 아닙니다. 저만큼 부모를 잘 만나지 못한 친구들, 저만큼 건강하지 않았던 친구들, 저만큼 공부를 잘할 수 있게 훈련받지 못한 친구들, 저만큼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없었던 친구들, 저만큼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친구들, 위기를 딛고 다시 일어날 기회가 없었던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행운이 따르지 않았던 친구들이 셀 수 없이 많았고, 그 친구들이 모두 대한민국의 평범한 시민이 됐습니다. 이들은 누구 하나도 남이 아닙니다. 저에겐 이렇듯 수많은 친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제게 중요한 가치는 합리주의입니다. 과학을 공부하면서 저도 모르게 제 몸에 밴 정신 같아요. 미국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 제 몸에 자리 잡은 가치는 효율성, 공정성 이런 것들입니다. 할당제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할당제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남성은 더 많은 소외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지금은 할당제가 한시적인 법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여성에게 혜택을 주는 법이 되었잖습니까? 양성평등 채용 목표제라든지….”
“자신이 얻은 기회는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약자와 소외된 자에 대한 공감이 부족한 게 아닐까요. 남성이든 여성이든 특정 영역에서 약자이자 소외된 입장이라면 할당제를 통해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초등학교 교원에 여교사 비율이 과도하게 높다면 남성 할당제를 고민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게 꼭 남성, 여성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울어진 운동장이 있다면 제도나 법률로 보완하며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 약자와 소외된 자에 대한 배려인 동시에 공감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공정함은 시험 성적, 그 결과 그대로 결정이 되어야지 다른 요소가 개입하는 순간, 공정한 잣대와 기준이 사라집니다. 이런저런 사유를 들기 시작하자면 이유 없는 죽음이 있으며, 사연 없는 무덤이 있을까요.”
“진보와 보수의 진검승부가 다가오고 있는 듯하네요. 공정한 경쟁의 본질이 무엇인지 더 고민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또 뵙고 토론하면 좋겠습니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이 대화는 대부분 사실(이준석 대표와 이탄희 의원의 글 등)에 근거하되 약간의 상상을 가미해 재구성한 것이다. 30대 보수당 당대표의 출현이 큰 뉴스다. 그보다 중요한 건 무엇이 공정인가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질문이다. 우리는 어떤 ‘공정’을 지지할 것인가. 판별의 시계가 서서히 대선에 맞춰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