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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성평등은 남성의 영역이기도 하다

등록 2021-05-26 18:02수정 2021-05-27 02:37

[기고] 야콥 할그렌ㅣ주한스웨덴대사

대한민국에 부임한 대사로서 경험하는 많은 특혜 중 하나는 흥미로운 세미나 또는 행사에 참석해 새로운 전문 지식과 지혜를 접하게 되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넘치는 재능을 보유한 대한민국에서 이런 행사에 참여할 때 내게 놀라움을 주는 또 다른 한 가지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다수의 발표자나 강연자는 남성이라는 점이다. 의문을 갖게 된다. 이미 오래전부터 대학 졸업생의 과반수를 여성이 차지하는 대한민국에서 더 많은 여성의 재능을 선보이지 않는 건 왜일까?

이러한 관행의 변화를 지향하는 아주 작은 노력으로 주한스웨덴대사관에서는 직원들의 ‘#성평등서약’을 새롭게 발표했다. #성평등서약을 통해 우리 대사관의 모든 직원은 행사를 주최하거나 참여할 때 적절한 성별 균형을 추구하고, 남성과 여성 간의 발표 및 발언 시간과 역할을 공평하게 배분하고, 대사관의 대외 활동비 책정에서도 성평등을 반영한 접근을 채택할 것을 약속했다. 그저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도 옮기고 있다. 지난해 우리 대사관이 주최한 행사에 참여한 총 107명의 발표자 중 49.5%는 여성이었고 50.5%가 남성이었다.

스웨덴의 인구는 1050만명으로 전세계 인구의 0.14%에 불과하다. 스웨덴 사회가 적은 인구와 동떨어진 지리적 위치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거둔 부분이 있다면 그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적은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통해 성평등에 집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웨덴에서는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노동 시장에 참여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일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추구하며,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 사랑할 권리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이는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떠나 모든 국민의 잠재력을 최대로 활용해야 한다’라는 상식에 귀결된다.

#성평등서약이 단지 상징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행동의 중요성을 믿는다. 어떤 주제이든 성별과 관계없이 동등한 대표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회와 개인 모두에 유익하고, 특히 여성들과 소녀들에게 영감과 희망을 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성평등과 페미니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성장은 오늘날 사회 트렌드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이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성별과 상관없이 동등한 권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공공 영역에서 남성들이 많은 권리를 독점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소속된 스웨덴 정부는 페미니스트 외교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스웨덴은 국내외적으로 성평등 및 인권 옹호를 위한 다년간의 노력 후, 2014년에 이 정책을 처음 수립했다. 스웨덴이 페미니스트 외교 정책을 채택한 이래로 스웨덴 외교부와 대사관들의 문화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이유는 무엇보다 그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페미니스트 외교 정책은 모든 국민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며 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약속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성평등은 지속가능하고 평화적인 사회적 도전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 전제조건이다.

3년의 시간을 대한민국에서 보내는 동안, 성평등 담론에 대한 관심이 확연히 상승하고 있음을 보았다. 스웨덴과 대한민국 양국의 상호적 관계에 있어 성평등이 꾸준히 중심적인 주제의 하나로 다뤄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기쁘게 생각한다. 그 한 예로 2019년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의 한국 방문 기간 동안 대한민국 여성가족부와 양해각서(MOU) 체결을 통해 협력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일과 가정에 있어 성별과 무관한 기회의 평등을 지향한다. 여성의 대표성을 강화하고 여성의 전문성을 가시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춘 한국인들과 함께 일하게 될 것을 나는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스웨덴과 한국 또한 세계 전역에서 완전한 성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성평등을 이루는 것은 젠더 전문가만의 책임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이를 위해 특히 우리 남성이 맡아야 할 몫의 특별한 책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할 일을 하자. 그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나는 스웨덴의 경험을 기쁘게 공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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