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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5·18 허위사실 처벌법이 필요한 이유 / 김정호

등록 2020-12-21 18:15수정 2020-12-22 02:37

전두환 처벌의 공백

김정호 ㅣ 전두환 재판 피해자 쪽 법률대리인·변호사

전두환씨의 ‘회고록’엔 황당한 주장이 포함돼 있다. 5·18민주화운동이 ‘북한군 특수부대 600명이 침투해서 광주 사람들과 일으킨 폭동’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전씨는 ‘광주에 왔다는 북한군’이 누구라고 꼭 집어 특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대법원은 ‘집단표시 명예훼손’의 경우 피해자를 특정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5·18 왜곡과 같은 집단표시 명예훼손의 경우 기존 법조항만으로는 처벌의 공백이 발생한다. 민사 구제책도 상징적일 뿐, 실효성이 없다. 그 때문에 전씨 회고록에 나온 5·18 역사왜곡에 대해 형사고소를 하지 못하고 출판 및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 등 민사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 법률이 최근 국회를 통과한 것은 이러한 현실적 고민과 맞닿아 있다. 이 법안은 5·18과 관련한 반대의견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5·18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한 개정안이다. 애초 법률안 발의 땐 ‘5·18 역사왜곡 처벌법’으로 불렸지만, 처벌 구성 요건 중 부인·왜곡·날조·비방이 빠지고 ‘허위사실 유포’만 남았다. 그런데도 일부에선 이 법안이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는 법”이라고 비판한다. 과연 합리적인 주장인가?

우선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럽이나 5·18 학살에 몸서리쳤던 우리나라의 ‘처벌법’과 그러한 역사적 경험이 없는 미국의 표현 자유 문제를 동일한 선상에서 평가해서는 안 된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도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보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헌법 제21조 제1항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제21조 제4항에선 “표현의 자유도 타인의 인격과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으로 직접 제한하고 있다.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5·18 허위사실 행위를 처벌하는 법률은 위헌이 아니다.

독일·프랑스 등 유럽 여러 나라엔 2차대전 때 나치가 저질렀던 유대인 대량학살 등 반인륜 범죄를 부정·왜곡하거나 학살을 찬양·미화·지지하면 징역형 등 처벌을 받도록 한 ‘홀로코스트 부정법’이 있다. 그러나 누구도 독일이나 프랑스의 법체계가 후진적이라거나, 반대의견을 억압하는 파시즘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유럽 시민사회에선 표현의 자유가 과거의 폭력적인 역사를 마음대로 왜곡해 공공의 평화를 위협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5·18 허위사실 처벌법은 표현·학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받아들여 보완 과정을 거쳤다. 먼저, 사적인 대화가 처벌되지 않도록 다수의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공연성 요건’을 갖춰야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독일 형법 제130조 제6항처럼 예술·학문·연구·학설이나 보도를 위한 것 등인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항도 신설해 남용을 경계했다. 유럽에선 홀로코스트를 부인만 해도 처벌하지만, 5·18 허위사실 처벌법은 해석·평가나 ‘의견 표명’의 경우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북한군 특수군 개입설처럼 이미 법원 판결 등을 통해 확인된 사실을 왜곡하는 행위는 처벌받을 수 있다.

5·18 허위사실 처벌법은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가 제시한 역사 부정죄의 정당성 근거와도 부합한다. 대부분 역사적 사안은 진실 규명을 위해선 역사 부정죄가 필요하다.(①진실 논거) 하지만 5·18의 왜곡은 단순히 진실에 반하기에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민간인 학살이라는 반인륜적 행위를 용인하는 셈이어서 허용될 수 없다.(②인간존엄 논거) 5·18 왜곡은 또 호남과 5·18유공자 등에 대한 혐오표현을 정당화한다. 광주에 온 북한 특수군(‘광수’)으로 상징되는 악의적 색깔론과 ‘홍어’로 대표되는 지역 비하의 혐오표현이 동시에 작동되는 유일한 역사적 사건이 바로 5·18이다.(③차별 논거) 생존자와 유족 등이 5·18 왜곡으로 또다시 고통을 겪고 있고(④피해자 논거), 과거의 문제가 아니어서 처벌이 필요하다.(⑤현재성)

법은 사회를 반영하는 그릇이다. 사회가 건강하면 규제할 법도 필요 없을 것이다. 5·18 진상규명과 역사왜곡에 대한 대처는 보수 진보의 문제가 아니고, 상식과 정의를 확인하는 일이다. 5·18의 왜곡과 폄훼가 혐오와 차별로 진화 중인 우리 사회는 “어제의 죄악을 오늘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죄악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다. 민주공화국은 관용으로만 건설되지 않는다”는 알베르 카뮈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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