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선 ㅣ 녹색당 운영위원장
2020년 12월19일 김진숙 지도위원 복직을 위한 첫날, 우리는 다시 희망으로 길을 내려고 합니다.
부산광역시 영도구 태종로 233. 이곳은 한진중공업이 있는 곳입니다.
큰집이 있는 영도는 제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곳입니다. 명절 때면 아빠가 모는 차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어느 날은 12시간씩 걸려 내려갔습니다. 우리 엄마, 작은엄마, 큰엄마 모두 음식 준비로 바빴겠지만 저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용돈과 예쁜 새 옷을 받는 날이었습니다. 한진중공업이라는 선박회사가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 살았습니다.
1981년에 영도의 대한조선사 용접공으로 입사한 김진숙씨는 5년 만에 해고자가 되었습니다. 단지 사람답게 밥 먹고 싶다고, 함께 일하는 동료 노동자들에게 남긴 한장의 편지로 해고자가 되었습니다. 그 세월이 벌써 35년입니다.
2016년, 당시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자인 이계삼씨의 선거운동 사진 속에 녹색당 점퍼를 입은 김진숙씨를 봤습니다. 이후, 김진숙씨는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아닌 녹색당 지지자인 동지로 내내 가슴에 새겨진 분입니다.
2019년 12월29일은 벗들과 송년 모임이 잡힌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김진숙씨가 친구 박문진씨의 복직을 위해 부산에서 영남대 의료원을 향해 걷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결국 함께 걷기로 결정하고 지인들에게 모임에 못 간다고 하자 뜻밖에 송년 모임 대신 함께 걷자며 원주에서, 인천에서 달려와주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를 꼬박 걸어 영남대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절대 울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걷던 김진숙씨는 영남대병원 옥상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친구를 발견하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는 모두 따라 울었습니다.
그랬던 분이 자신을 위한 마지막 투쟁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2020년 6월23일 김진숙씨의 복직을 위한 기자회견을 한진중공업 앞에서 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산행 새벽 기차를 탔습니다. ‘35년간 단 한번도 포기하지 않은 꿈, 복직’ 나는 언제 저런 간절한 소망을 가져본 적이 있었는지 떠올려보았습니다. 그 마음이 감히 짐작이 안 돼서 내일 그분을 어찌 만날까 두려워 기차에서 잠들지 못하고 밤을 보냈습니다.
아침에 부산역에 도착하니 눈앞에 꽃집이 보였습니다. 꽃집을 둘러보다 “사장님, 꽃말이 희망인 꽃이 있을까요?” 사장님이 추천해준 꽃은 리시안서스(변치 않는 사랑), 델피늄(당신에게 행복을 드릴게요)이었습니다. 그 꽃들로 이쁘게 꽃다발을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드리며 이 꽃이 누구에게 전해지는지 설명드렸습니다. “아, 귀한 꽃다발이군요.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35년간 복직의 꿈을 간직한 김진숙이라는 부산의 노동자를 기억해주시고 부산 시민들이 함께 관심 가져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김진숙씨를 찾아갔습니다. 김진숙씨는 환하게 웃으며 “나 아직 복직 안 했는데” 하며 꽃을 받아주었습니다. “이제 곧 하실 테니 미리 축하드립니다”라고 하자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지난 11월12일 부산녹색당 당원 기본 교육이 있어 다시 부산에 갔습니다. 영도조선소 앞에서 매일 하고 있는 김진숙씨의 복직 선전전에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부산녹색당의 김민우 사무처장님께서 복직을 염원하는 펼침막을 제작해주셨고 함께 갈 부산녹색당 당원들을 조직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날 김진숙씨를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몸이 안 좋아 피켓을 들고 서 있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차 안에 있어야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날 이후 김진숙씨는 병이 커져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하고 치료 중이라는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제는 김진숙씨가 그토록 원했던 공장으로 돌아가 정년퇴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날이 오면 저는 5월의 담장을 뒤덮은 장미꽃, 꽃다발을 들고 만나러 갈 것입니다. 정년을 축하드리며 지금부터는 자신만을 위해 사시라고 꼭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그날을 하루속히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