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경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 APG 아태지역 책임투자부 부서장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오스트레일리아(호주)와 미국 캘리포니아 일대가 몇 달씩 불타오르고,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는 이상기후 피해에 관한 뉴스를 듣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우리 마음에는 이러한 재해가 머지않아 우리의 현실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석탄화력발전의 미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본은 이미 본격적인 이동을 시작했다. 글로벌 투자·금융기관들은 속속 석탄 채굴과 석탄발전 사업에 대한 신규 프로젝트 금융이나 지분 투자 중단을 선언하고, 투자 대상 기업에 탄소배출 감축 계획을 요구하고 있다.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APG·에이피지)을 포함해 총자산 규모가 4경5천조원(미화 39조달러)에 이르는 전 세계 450개 기관투자가들이 참여하는 주주행동 이니셔티브인 ‘클라이밋 액션 100+’가 대표적이다. 주요 대상은 탄소배출에 책임이 있는 세계 100대 상장기업으로, 한국 기업으로는 한국전력, 포스코,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이 포함되어 있다.
에이피지는 이미 10년 전에 석탄화력 신규 투자를 중단하였다. 투자 대상 사업을 두고서는 기후변화 위험에 대한 정밀 실사를 진행하고, 기업들이 탄소감축 전략을 세우고 시행하도록 주주로서 요구하고 있다. 투자팀은 태양광, 풍력, 효율 개선, 에너지 저장 등 청정에너지 관련 투자처를 끊임없이 발굴한다. 에이피지가 유별난 것이 결코 아니다. 전 세계 금융권이 이런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반면 석탄화력발전 사업에 대해서는 눈 깜짝할 사이에 등을 돌리고 있다. 영국, 프랑스, 캐나다를 비롯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향후 10년 내에 석탄화력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겠다는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탄소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투자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다음 단계는 탄소배출이 높은 상품에 대한 수입 제한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탄소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의미다.
이런 와중에 석탄발전에 여전히 신규 투자를 강행하고 있는 기업이 있으니, 바로 우리나라 전력 공기업 한전이다. 한전은 현재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에서 석탄발전 사업 투자를 추진 중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투자자 관점에서 매우 우려되는 지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해당 사업의 기존 투자자 이탈이 뚜렷하다. 인도네시아 자와 9, 10호기 사업은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2019년 말에 탈석탄을 선언하면서 투자를 철회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베트남 붕앙-2 사업은 아태지역 대표적인 전력기업인 중화전력(CLP)이 탈석탄 선언과 함께 매각하는 지분을 한전이 매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며, 이후 스탠다드차타드, 싱가포르개발은행 등이 투자를 철회하고 빠져나갔다. 이것은 결국 무슨 의미인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석탄발전은 투자 가치가 없는 “폭탄”과도 같은데, 이 “폭탄 돌리기”의 와중에 한전과 한국의 공적 금융기관들이 막대한 자금을 들여 이를 떠안고 있다.
둘째, 한전 경영진과 이사회가 과연 주어진 책무를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 주주로서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인도네시아 석탄발전 사업에 대한 한전의 입장은 경영진이나 이사회의 입장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고 믿고 싶을 정도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전은 부정적인 예비타당성조사 결과를 무시하고 투자금액을 살짝 낮추는 방법으로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한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한전 경영진과 이사회는 기업가치의 현저한 훼손이 예상되는 투자를 대놓고 법령을 우회하면서 강행하는 것이고, 이는 기본적으로 신의성실의 의무에 심대한 위반이다.
에이피지는 지난 몇 년 동안 한전 지분의 상당 부분을 처분하였다. 한전이 에이피지의 투자 대상으로서 가치를 잃었기 때문이다. 한전이 해외 석탄발전 투자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 옳은 결정이었다는 확신이 들어서 더욱 씁쓸하다. 공기업인 한전의 경영진과 이사회는 이번 해외 석탄발전 사업 투자에 대한 의사 결정 과정 및 결과가 우리 사회와 산업계 전반에 주는 영향에 대해서 진지하게 재고해야 한다는 것을 한전의 주주로서, 또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지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