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퀸스대학 박사과정(스포츠젠더 전공) 체육계에서 미투 움직임이 뜨겁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기간이 아닌데도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체육 관련 단어가 이렇게 많이 올라온 적이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공분하며 이번 기회에 체육계가 완전히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앞다퉈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의 성적 지상주의, 폐쇄적 선수 양성 문화, 코치와 선수 간 수직적 상하 복종 관계 등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폭력 사건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빈번히 일어나고 있고 이에 대한 분석과 해결책은 10년, 20년 전과 같다. 현재 논의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체육계에서 폭력은 선수들의 경기력을 향상시키고 기강을 다잡는 데 쓰이는 전근대적 인권탄압식 코칭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폭력은 어떨까? 성폭력을 저지른 체육계 인사 가운데, ‘성적을 올리려고 성추행 또는 성폭력을 저질렀습니다’ 또는 ‘선수들 정신이 해이해져서 성적 모욕을 하고 마사지를 시키게 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성폭력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여성의 몸에 대한 폭력이기 때문에 폭력과 성폭력은 다르게 접근되어야 한다. 성폭력은 선수들의 경기력이나 기강과는 별개로 즉, 체육과는 관련 없이 일어나는 문제다. 성폭력과 폭력을 나란히 놓고 원인 분석을 하는 것은 ‘성’과 ‘여성’이 논의에서 탈각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체육계 성폭력 문제의 본질은 체육의 특수성 때문이 아닌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 때문이다. 즉 ‘남성과 여성 간 힘의 불균형’이 문제인 것이다. ‘체육이 남성적’이라는 말은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매우 당연한 사실이 돼버렸다. 체육의 남성중심적 구조와 문화를 해체하려는 노력이 더뎠던 만큼 헤게모니적 남성성과 성별 간 권력 구조는 공고히 자리 잡았다. 그렇게 체육은 여성이 성폭력 위협에 일상적으로 노출되고 남성의 성적 폭력을 용인하는 ‘강간문화’, 남성이 남성답게 공격적으로 경쟁하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도록 만드는 ‘위해한 남성성’, 그리고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성적 도구로 통제하려는 ‘여성혐오’로 잠식돼왔다. 물론 대한민국 체육계 구조는 이러한 남성성의 파괴적인 요소가 더 퍼져나가도록 방조해왔다. 그러나 성폭력의 근본적 원인으로 볼 수는 없다. ‘폐쇄적 승리 지상주의’의 체육 구조는 ‘남녀 불평등’의 젠더 구조가 존속하고 은폐될 수 있게 도와주는 구실을 해왔을 뿐이다. 체육계 성폭력은 ‘갑’의 위치에 나이가 많고 권력을 지닌 남성 코치가, ‘을’의 위치에 나이가 어리고 권력이 없는 여성 선수가 위치하여 불평등한 젠더 권력 구조가 형성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때 여성 선수의 몸은 남성 코치의 성적 욕구를 채워줄 사물, 자신의 남성성에 도전하지 못하게 예속시켜야 하는 대상, 성적 자기결정권이 박탈되어야 하는 존재로 전락한다. 대한체육회는 여성 부촌장과 훈련관리관 채용을 해결책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체육계 결정권을 가진 자리에 여성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대한체육회의 여성체육위원회가 명목상으로만 존재하여 여성이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에서 여성 부촌장은 단순한 상징에 불과하다. 여성 체육지도자는 채용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지도과정에서 수많은 편견과 불평등과 싸워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체육 구조만을 바꾸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체육계 성폭력을 근본적으로 뿌리 뽑기 위해서는 기존 체육계의 젠더 구조를 해체하는 작업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체육 정책을 마련하고 추진하는 모든 과정에서 젠더 영향을 분석해 성평등성을 높이는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전략이 필요하다. 체육 정책 전반에서 성적 규율과 규범 해체를 목표로 하는 인식 전환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작업이 이뤄지지 않으면 체육계 성폭력은 지속될 것이다. 학교에서 체육교사가 학생에게, 지역사회 체육관에서 스포츠클럽 지도자가 구성원에게, 선수촌에서 국가대표 감독이 선수에게, 언제든지 다시 일으킬 수 있는 문제다. 조재범 사건은 체육계에만 일어나는 특수한 사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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