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다.”
안내용 마이크는 반응이 한 박자 느렸으므로, 그 말이 대로에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나서야 나는 내가 말한 것을 깨달았다. 10m 바깥의 발레파킹 직원들이 컨테이너 박스에서 뛰쳐나와 주차도우미 부스 쪽을 내다보았다. 나는 마이크를 끄고 심호흡을 한 뒤, 영업시간 안내멘트를 시작했다. 발레파킹 직원들은 잠시 서 있다가 자리로 돌아갔다. 1월의 밤, 주차도우미로 일하던 때였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내 노동의 대가인 140만원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140만원 중 30만원이 육체노동에 대한 값이고, 나머지는 눈물 값인 것 같다고 생각하며 울었다.
어디까지가 감정노동에 대한 값일까? 물론 주차도우미의 업무는 항상 사람을 대하는 일이기 때문에 딱 떨어지게 말할 수는 없다. 주차도우미는 지정된 장소에서 인사하고 주차공간, 주차비용, 운영시간, 시설 내부 등에 대해 안내하고 고객의 요청 시 필요한 응대를 한다. 차량동선 조정, 입차 제한, 발권 등 지정된 장소에 따라 업무내용은 조금씩 바뀐다.
가장 중요한 업무는 차량을 향해 ‘인사’하는 것이다. 여기서 ‘인사’는 일상생활 내에서의 인사와는 다르다. ‘인사’는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45도 각도로 허리를 숙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솔’ 톤으로 안내멘트를 하고, 허리를 펴면서 눈에 띄는 손동작으로 입차 방향을 안내한다. 이 중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미소’다. 차 안에서 보아도 알 수 있게끔 입술 색을 칠하고 입꼬리를 올려야 제대로 ‘인사’한 것이다. ‘인사’는 친절의 첫 번째 과정이다.
친절한 미소는 왜 필요한가. 고객들의 항의 때문이다. 주차도우미는 현장을 맞닥뜨리고 나서야 업무에 대해, 그리고 고용주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고객은 심기 불편한 상태이고, 누군가는 그 앞에서 ‘당신의 불편을 신경 쓰고 있다’라는 의미로 미소를 던져야 한다. 그것이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자, 이제 신입 도우미가 지하 3층 주차장에 서게 되었다. 때는 일요일 정오, 차량이 좁은 간격으로 줄 서 있다. 사실상 갇혀 있는 셈이다. 그 안에서는 다양한 사연들이 만들어진다. 우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부모, 화장실이 급한 운전자, 값비싼 공연의 입장 시간을 놓친 사람, 물건 납품하러 왔다가 줄을 잘못 서서 쩔쩔매고 있는 기사까지. 이때 도우미가 할 수 있는 일은 대기시간이 1시간가량 남았음을 친절하게 전하는 것이다. 공허한 친절로 도우미도 고객도 지쳐갈 때쯤, 고객은 무리한, 그러나 고객 입장에서는 정당한 요구를 한다. 위험하더라도 남는 공간에 차를 세우고 싶다, 차 열쇠를 줄 테니 알아서 세워 놔라,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라 등이다. 당신이라면 뭐라고 답할 것인가? 상식적인 답은 다음과 비슷할 것이다. ‘위험한 곳에 주차하시면 안 됩니다’, ‘근무지를 벗어나는 건 불가능합니다’.
주차도우미로서 대답한다면, 위의 답은 틀렸다. 주차도우미가 할 수 없는 말이 세 가지 있다. 바로 ‘안 됩니다’,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이다. 나의 상사는 안 된다는 말 대신, ‘어렵습니다’라는 말을 쓰라고 했다. ‘어렵습니다’라는 말에 사람들은 “된다는 거야, 안 된다는 거야?”라고 되묻는다. 다시 원점이다. ‘안 된다’라는 말은 해선 안 된다.
안내에는 분명한 의미 전달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안 된다’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는 이유가 뭘까. 고객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이 제재는 주차요원 중 주차도우미(여성)에게 한정된다. 비슷한 이유로 차 안의 고객을 내려다보는 것 또한 금지다. 무릎을 굽혀서 고객보다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 왜 주차도우미는 안 될까? 고용주는 정말 주차도우미에게 안내를 시키고 싶은 걸까?
근무지 이동 중, 고객과 수신호 근무자가 실랑이 벌이는 모습을 보았다. 사연인즉, 근무자가 우수고객을 일반고객 줄로 안내한 것이다. 그러나 앞도 뒤도 막혀 대기 줄을 옮길 수 없는 상황. 운전자는 근무자에게 언성을 높이고 있었고, 남자 주임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앞을 지나던 나에게 주임은 이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곤 “네가 사과해”라고 말했다. “제가요?” “남자 손님이니까 가서 사과 좀 해. 너 여자잖아. 도우미가 낫지.”
나는 납득하지 못했지만 고객에게 “못 알아봐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했다. 남자 손님은 몇 마디 쏘아붙이곤 유리창을 올렸다. 닫힌 창문 너머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서야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사건 속의 남자 주임은 책임이 없어도 사과하는 것이 주차도우미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위의 사례뿐 아니라, 주차장 내에 그러한 생각은 지배적이다. 고객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주차도우미는 화내도 되는 대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고객들은 주차가 늦어지면 당당하게 욕설과 폭언을 늘어놓는다. 자신의 언행으로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을 것을 안다. 그렇다면 주차도우미는 자기방어를 할 수 있을까? 도우미가 문제 고객을 발견했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은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다. 창밖으로 욕하고 소리 질러도 말이다. 하지만 주차도우미를 묶어두는 것은 따로 있으니, 감시카메라다. 감시카메라 설치의 주목적은 주차장 내부 확인이다. 관리직원이 주차장 전체를 모니터하고 지시를 내리는 데 사용한다. 하지만 그 목적만은 아니다. 주차요원들의 서비스도 지켜본다. 근무태도를 꼼꼼히 체크하는 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모니터하면서도 문제 고객에겐 마땅한 조처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주차장에는 간혹 ‘급정거 장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속도를 올렸다가 노동자 앞에서 급정거하는 것이다. 물론 있을 수 있는 실수다. 하지만 실수라고 말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어느 날, 일하는 중에 도보 위의 손님들이 내 쪽을 향해 소리 질렀다. 그중에는 우연히 그 앞을 지나는 대리도 있었는데, 그 역시 나를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보다가 문득 바로 뒤에 차가 서 있음을 깨달았다. 운전자는 무표정했고, 나는 우수고객 스티커를 보았다. 내가 비켜서자 차는 붕,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대리는 나를 불러 혼내기 시작했다. 왜 거슬리지 않게 피하지 못했느냐는 것이었다. “저 사람들, 너 하나 쳐도 문제없이 살 사람들이야. 다치면 너만 손해야.”
그 상황의 대리도 마음이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고객은 왕이니까, 우리는 그들을 탓할 수 없다’라는 태도는 나의 상사가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기대뿐 아니라, 내 마음속의 방어기제, ‘나는 근무자일 뿐 고객과 평등하다’는 생각까지 무너뜨렸다. 이곳에서 그들은 왕이고, 나는 하녀다. 말을 탄 왕이 하녀 하나쯤 쳐도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라는 질문이 나만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주차장의 모두가 문제를 알고 있다. 그들 역시 피해담의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주차서비스 업체는 대개 아웃소싱이다. 1~2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한다. ‘똑바로 웃어라’, ‘부지런히 인사해라’ 등의 관리 감독은 재계약을 의식한 것이다. 고객이 컴플레인 한 번 걸면 재계약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형시설은 고객의 목소리를 들을 뿐, 노동자의 아우성은 신경 쓰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라는 질문에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일을 접고 나간다. 그러나 쉽게 답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대체로 ‘어린’, ‘가난한’ 등의 키워드로 표현되는 사람들이다. 내게 화장법을 알려주던 스물세살 도우미가 있었다. 나와 친구가 수능 이야기를 나누자, 우리에게 옷을 집어던졌다. 그러곤 “난 수능 근처에도 가본 적 없어. 내 앞에서 수능 이야기 하지 마”라고 말했다.
열여덟살 도우미도 있었다. 궂은 아르바이트 경험을 흥미진진하게 늘어놓곤 하던 아이였다. 아쉽게도 나와 좋은 사이는 아니었는데, 갈등이 생기자 상사에게 “어차피 저 언니는 일 오래 안 해요. 저는 오래 할 거예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 말은 맞았다. 나는 ‘노’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남을 수밖에 없는 사람과 떠날 수 있는 사람을 구분하고 있었다. 수능 이야기를 하면 소외감 느끼는 사람들, 어리기 때문에 나은 일거리를 찾기 어려운 사람들, 그들은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해야 해.”
질 낮은 일이라도 해야 하는 사람들과 재계약에 목매는 아웃소싱 업체, 잔인한 친절을 요구하는 대형시설 속에 ‘손님은 왕’이라는 프레임은 강화되고 감정노동의 강도는 인권이라는 말이 허망하리만큼 높아진다.
주차도우미는 나의 첫 아르바이트였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그만두었다. 그 뒤로 1년간 악몽을 꿨다. 차에 치이는 꿈, 출구를 찾아 헤매는 꿈, 쫓기는 꿈…. 주변사람들에겐 “다신 그 지옥에 안 가, 다시 가면 나는 사람도 아니야”라고 말했지만, 바로 다음 해에 지옥으로 돌아갔다. 등록금과 생활비, 책값이 필요했고, 짧은 시간 안에 돈 벌기 위해선 다른 방법이 없었다.
두 번째 근무는 겨울부터 여름 전까지 했다. 나를 채용한 업체는 달라졌지만 더 나은 점도, 더 나쁜 점도 없이 비슷했다. 백화점 주차장 갑질 모녀가 논란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분노했지만 나는 오히려 기뻤다. 언젠가 한 번은 조명되어야 할 일이었다. 아직도 주차장에는 감정노동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황금별 학생
※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이사장 조돈문, 소장 이남신)가 주최한 ‘2015 비정규노동 수기 공모전’ 당선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