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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예정된 패배로 돌진하는 야권 / 이부영

등록 2014-03-26 19:12수정 2014-03-27 16:10

“선거에 지더라도 대선 공약을 지키는 것만이 새 정치”라는 요지의 서신을 필자에게 보내온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거주 동포 언론인 김정엽 선생님께 보내는 답신입니다.

김정엽 선생님께,

멀리서도 항상 고국의 일상사에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시고 귀한 글을 써주시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지방자치 선거의 무공천 문제에 관한 김 선생님의 걱정을 이해합니다. 저는 지난 10년 가까이 지방자치가 중앙의 대정당들에 휘둘려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는 것을 바로잡고자 기초선거 공천폐지 운동을 벌였습니다. 지난 대선 운동 과정에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후보가 무공천 공약을 함께 하는 것을 보고 이번에는 지방자치가 제대로 자리잡으려나 보다 하고 다행으로 생각했지요. 그러나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한마디 해명도 없이 헌신짝처럼 무공천 공약을 내던져 버리더군요. 그런데 조직의 부담이 없는 안철수씨는 박근혜-새누리당 쪽이 공약을 지키지 않아도 야권이라도 무공천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공약대로 주장했습니다. 민주당은 안철수씨와 경쟁하는 입장이라서 속으로는 현실적으로 패배가 우려되면서도 그의 주장에 따라왔습니다. 급기야 예상보다 빨리 두 세력의 통합이 지방선거 이전에 성사되었습니다. 두 세력의 접합제 구실을 한 것도 이 무공천 공통공약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이렇습니다. 기초선거의 여당 후보는 금쪽같은 기호 1번을 받아 단일후보가 됩니다. 기호 2번이 되어야 할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는 무공천이므로 당에서 탈당해야 하고 더욱이 무수한 무소속 후보 가운데 한 사람으로 허우적거리게 되었습니다. 누가 누군지, 새정치민주연합의 후보가 누구인지 구별도 안 됩니다. 특히 전통적인 민주당 야권 지지 유권자들의 경우, 후보자 이름도 잘 알지 못하고 기호 2번만 알고 찍던 유권자들은 헷갈려서 찍을 후보를 가려내지도 못하게 생겼습니다. 공약을 지키지 않은 새누리당 후보들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유유히 선거운동을 펼치고, 공약을 지켜 무공천을 실시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후보들은 어쩔 줄 모르고 패배감에 젖어 있습니다. 공약을 지키지 않은 쪽은 유리해지고 공약을 지킨 쪽은 불리해지는 선거는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정치행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공약을 지켜서 불리해지는 쪽이 불공정을 바로잡고자 상대방이나 마찬가지로 공천제로 복귀하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다음에 다시 여당과 무공천 협상을 벌여 합의한 가운데 공정한 선거경쟁을 벌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봅니다.

보수 일색인 조·중·동과 종편 방송들은 공약을 지키지 않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절체절명의 불리함 속에 무공천 공약 재고해 달라고 간청하는 새정치민주연합 쪽 후보들만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런 형편대로 가면 호남을 제외하고는 전국적으로 야권은 기초선거에서 전멸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광역단체장들도 밑바닥 조직이 흔들리면서 모두 위험하게 생겼습니다.

저는 기초선거 무공천도 정치의 수많은 정당성 가운데 한 가지라고 봅니다. 여권은 공약을 이미 쓰레기통에 버려 야권을 ‘정당성의 함정’에 빠뜨려놓고 장기집권의 장밋빛 전망을 그리기에 바쁜데, 야권은 수많은 병사와 일선 지휘관을 사지로 몰아넣으면서 ‘예정된 패배’로 돌진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선거를 치르기 전 70일 정도의 시일이 남아 있어서 시간은 충분합니다. 만약 이번 지자체 선거에서 야권이 패배할 경우 새 정당 창당의 약효는 증발해 버릴 겁니다. 선거 패배의 후유증으로 안철수-김한길 지도부 책임추궁이 이어질 겁니다. 더 큰일은 총선과 대선의 전망도 암울해진다는 점입니다. 김 선생님의 걱정이 크신 듯해서 서신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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