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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상담실을 돌려주세요 / 안정선

등록 2012-02-15 19:51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단언하건대 상담을 받은 아이들이
폭력성도 훨씬 줄어듭니다
그들은 영혼이 없는 악마가 아닙니다
저는 서울에 있는 한 남자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입니다.

10년 전쯤만 해도 어느 학교에나 있던 ‘진로상담부’는 학교 상담을 담당하는 곳이라기보다 퇴직을 앞둔 원로교사의 쉼터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03년 전문상담교사에 관한 특례법이 마련되면서 학교 상담실이 제구실을 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이 싹텄습니다.

저는 그렇게 전문상담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학교 진로상담실에서 상담 업무를 하게 됩니다. 여러 선생님들과 힘을 합쳐 학교 자체에서 ‘왕따 지수’를 측정할 수 있는 검사지도 만들고 교사 전체를 대상으로 ‘교사상담연수’도 진행했습니다. 왕따를 당한 아이들과 생활지도부에서 징계를 받은 아이들을 중심으로 미술치료와 독서치료 상담을 하면서 상담실이 치유 공간으로 자리가 잡혀 간다고 여러 선생님들과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2009년 학교의 부서를 개편하면서 진로상담부는 없어졌습니다. 방과후 수업을 주로 담당하던 부서와 합쳐지면서 이른바 ‘학습컨설팅’, ‘진학 상담’이 필요하다는 명목 아래 일반 학생들의 상담이나 일탈 학생 및 왕따 고민 상담 등은 유명무실해졌습니다. 돌이켜 보니 그렇게 진로상담부가 없어진 시점은 정권이 바뀌고 학교가 경쟁과 성장, 학업성취도 점수와 방과후 수업 참여 학생 수로 성과를 평가받게 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다른 학교에서도 비슷한 현상들이 나타났으니까요.

다행히 작년에 다시 상담실은 생활지도부에 흡수되면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교과부의 정책이 바뀌어서가 아닙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체벌을 없애는 대신 학교에 전문상담교사를 1명씩 배치하겠다 하여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학교에 스쿨폴리스가 들어온다 해도, 폭력을 행하는 학생들을 소년원에 처넣는다 해도 학교폭력은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성인 범죄자들의 경우에도 범죄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교화를 강화하여 범죄의 재발을 막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중요한 일임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하물며 자라나는 아이들이 일진이고 왕따 가해자라고 강력한 처벌을 받게 하면 과연 그것으로 학교폭력이 뿌리가 뽑힐지 의문입니다. 학교에서 퇴학당하거나 소년원을 다녀온 아이들이 돌아와 학교가 아닌 거리에서 또다른 선량한 어린 청소년들의 인생을 유린하는 악순환이 거듭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가해자의 인권만 중요시해서가 아니라, 학교폭력 문제는 강력한 처벌이 전부가 아님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학교 상담실이 활성화된다 해도 학교폭력이 아주 없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감옥에 가두는 것보다 상담실에서 열심히 상담을 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단언하건대 상담을 받은 아이들이 폭력성도 훨씬 줄어듭니다. 학교폭력의 가해 학생들도 영혼이 없는 악마가 아니라 일그러진 사회의 모습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상처받은 아이들입니다. 그 아이들의 상처를 보듬고 그들 속에 숨겨진, 폭력을 폭력으로 갚고 싶어하는 마음을 어루만져 누그러지게 해야 합니다. 또한 피해 학생들도 제대로 상담을 받아야 용기 내어 왕따를 당한 사실을 말하는 법을 더 잘 배웁니다. 상담을 통해 사건을 알리는 것뿐 아니라 스스로 상황에 대처하는 지혜와 강인함도 함께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학교 상담실은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상담실은 인성교육을 하는 공간이 되어야 하고 학교 교사 모두가 제대로 된 상담가가 되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교과부 장관님, 서울시교육감님, 그리고 각 학교 교장 선생님, 학교 상담실이 진정 깊이 있는 생활상담, 청소년 상담, 치유 상담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제대로 상담할 수 있는 전문가들과 공간을 제공하고 학교 업무에서 상담 업무의 중요성을 깊이 염두에 두어 주십시오. 그것이 지금 병들어가는 학교를 치료할 첫번째 치유책이라고 교단에서 21년째를 맞이하는 현장 교사, 강력히 주장하고 부탁하는 바입니다.

안정선 서울시 강남구 대치4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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