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을 보내며
어젯밤 꿈속에 지리산에 오셨다
살아생전 김대중 선생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어머니
소복을 입고 산중 외딴집을 찾아와
밤밭에서 자꾸 나를 불렀다 야야, 막내야
한 갑자 전에 백범 선상이 가시고 참 마이도 죽었다
그러다 난리가 났다카이
지발, 네 애비처럼 되지 말거래이
말 안 해도 알제, 잘 알제? 87년 대선 때 경북 문경군 마성면 하내리에
공정선거 감시단으로 귀향했을 때
어머니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군청 강당에서 개표를 하는데
서성국민학교 투표함에서 김대중 표 석장이 나오자
마치 반공궐기대회처럼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울그락불그락 관료들 앞에서 새마을지도자가 소리쳤다
빨갱이 세 놈이 있었구만, 내 안 봐도 다 안다카이!
비밀투표였지만 공개적인 비밀이었다
후배 재국이와 나, 그리고 나머지 한 표는 누구일까
찬바람에 깡소주를 마시면서도 내내 궁금했었다
이른 새벽 술 냄새라도 풍길까봐 막 돌아눕는데
어머니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내는 안다. 저 선상님은 간첩이 아이라카이, 그렇제? 그로부터 딱 10년 뒤에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내일은 좋은 일 안 있겄나?
나 가고 나믄 니도 인자 험한 일 좀 고마하거래이
수절 40년의 어머니가 밤나무 가지를 타고 오르자
바로 그 다음날 선생은 대통령이 되었다
장례식 날 불효막심하게도 감사의 큰절을 올렸다
어무이, 발목을 놓아주시니 고맙심더
이제 내는 서울에서 별로 할 일이 없어졌심더
마침내 사표를 내고 지리산 입산의 명분이 생겼다 그리고 다시 10년 뒤
어머니 제삿날 무렵에 정권이 바뀌었다
나는 무작정 5대 강을 따라 걷기만 하다가
노무현 순명(殉名)의 충격으로 이미 몸의 반쪽이 무너지고
88일 만에 선생의 나머지 반쪽마저 무너지고
역주행 한반도가 다시 20년 전 아니 60년 전으로 돌아간 뒤에야
꿈속에서 어머니를 다시 만났다 야야, 막내야
정신 바짝 차리거라 한 갑자 전에도 선상이 가시고
참 마이도 죽었다 그러다 난리가 났다카이
말 안 해도 알제, 잘 알제? 그러나 나 아직 어머니의 말뜻 몰라
곰팡내 나는 <송하비결>까지 들추는데
2010년 경인년 봄의 백호쟁명살이 심상치 않다
산 아래 핏빛이 돈다(山下血光)
도시 가운데가 불타고 연기가 오른다(都中焚煙)
꺾이고 꺾이고 벗겨지고 벗겨지리라(折折剝剝)
예언은 그저 그 불행의 경계일 뿐이라지만
시대의 큰 어른들이 다 떠나고 난 뒤에
행여 누가 있어 이 피바람을 잠재울 것인가
한낱 종이쪼가리 비결 앞에 무릎을 꿇으며 묻는다
어무이, 눈물의 값에 외상이 있능교?
어무이, 참말로 피의 값에도 외상이 있능교? 이원규/시인
살아생전 김대중 선생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어머니
소복을 입고 산중 외딴집을 찾아와
밤밭에서 자꾸 나를 불렀다 야야, 막내야
한 갑자 전에 백범 선상이 가시고 참 마이도 죽었다
그러다 난리가 났다카이
지발, 네 애비처럼 되지 말거래이
말 안 해도 알제, 잘 알제? 87년 대선 때 경북 문경군 마성면 하내리에
공정선거 감시단으로 귀향했을 때
어머니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군청 강당에서 개표를 하는데
서성국민학교 투표함에서 김대중 표 석장이 나오자
마치 반공궐기대회처럼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울그락불그락 관료들 앞에서 새마을지도자가 소리쳤다
빨갱이 세 놈이 있었구만, 내 안 봐도 다 안다카이!
비밀투표였지만 공개적인 비밀이었다
후배 재국이와 나, 그리고 나머지 한 표는 누구일까
찬바람에 깡소주를 마시면서도 내내 궁금했었다
이른 새벽 술 냄새라도 풍길까봐 막 돌아눕는데
어머니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내는 안다. 저 선상님은 간첩이 아이라카이, 그렇제? 그로부터 딱 10년 뒤에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내일은 좋은 일 안 있겄나?
나 가고 나믄 니도 인자 험한 일 좀 고마하거래이
수절 40년의 어머니가 밤나무 가지를 타고 오르자
바로 그 다음날 선생은 대통령이 되었다
장례식 날 불효막심하게도 감사의 큰절을 올렸다
어무이, 발목을 놓아주시니 고맙심더
이제 내는 서울에서 별로 할 일이 없어졌심더
마침내 사표를 내고 지리산 입산의 명분이 생겼다 그리고 다시 10년 뒤
어머니 제삿날 무렵에 정권이 바뀌었다
나는 무작정 5대 강을 따라 걷기만 하다가
노무현 순명(殉名)의 충격으로 이미 몸의 반쪽이 무너지고
88일 만에 선생의 나머지 반쪽마저 무너지고
역주행 한반도가 다시 20년 전 아니 60년 전으로 돌아간 뒤에야
꿈속에서 어머니를 다시 만났다 야야, 막내야
정신 바짝 차리거라 한 갑자 전에도 선상이 가시고
참 마이도 죽었다 그러다 난리가 났다카이
말 안 해도 알제, 잘 알제? 그러나 나 아직 어머니의 말뜻 몰라
곰팡내 나는 <송하비결>까지 들추는데
2010년 경인년 봄의 백호쟁명살이 심상치 않다
산 아래 핏빛이 돈다(山下血光)
도시 가운데가 불타고 연기가 오른다(都中焚煙)
꺾이고 꺾이고 벗겨지고 벗겨지리라(折折剝剝)
예언은 그저 그 불행의 경계일 뿐이라지만
시대의 큰 어른들이 다 떠나고 난 뒤에
행여 누가 있어 이 피바람을 잠재울 것인가
한낱 종이쪼가리 비결 앞에 무릎을 꿇으며 묻는다
어무이, 눈물의 값에 외상이 있능교?
어무이, 참말로 피의 값에도 외상이 있능교? 이원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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