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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 독자시

등록 2009-08-19 20:47

그가 있었다

거기 산이 있었다
장엄하게
혹은 장엄하지 않게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었고
삭풍 휘몰아치는 겨울에는
든든한 바람막이였던
그대는
정녕 커다란 산이었다

거기 들이 있었다
가없이 펼쳐진 인생밭
그대는
흉년이면 흉년대로
풍년이면 풍년대로
너른 가슴으로
세상의 온갖 씨앗을 품고
어르며
달래며
그 모든 것들이 활짝 개화하기를 기원했던
그대는
어머니의 가슴을 닮은 대지(大地)였다
거기 강이 있었다
흐른다는 것의 의미를
우리가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야 되는지를
묵묵한 몸짓으로 보여준
그대는
우리에게
울울창창한 숲이었으며
오곡의 넉넉한 창고였고
영원토록 마르지 않는 젖줄이었다

그러므로
그대는
그것이었고
저것이었으며
이것이었다
아니
우리였고
우리의 우리였으며
이 세상 모든 것의 모든 것이었다

오장근/시인·전남 목포시 석현동



인동초, 별로 다시 태어나다

민주주의가 엄동설한에 떨고 있을 때
그 겨울 한 송이 꽃이 피어났지요
생명이 숨죽이는 땅, 대한민국
꽃향기 세상을 깨웠습니다
국민들 그 향기에 겨울 건너왔지만
꽃은 독재의 칼에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야 했어요

겨울에 피어난 꽃, 당신 이름 인동초
민주주의를 향해
한 발 한 발 쉬지 않고 나아갔지요
살을 저민 칼바람
당신 신념 꺾을 수 없었고
당신 꿈 막을 수 없었지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향기 잃지 않았던 당신
오늘 그렇게 사랑했던 조국 두고
떠나가는 발걸음, 아프고 아픕니다
이제 인동초의 생 마감하고
별로 다시 태어날 당신

고단했던 민주주의
한반도 평화통일
당신 이름 뒤에 따라다녔고
당신 있어 포기하지 않았어요
당신 꺾으려 했던 사람들
마음으로 품은 세월
인동초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동지섣달 피어난 인동초
오늘 밤 한반도 밤하늘에
별 하나 떠오를 거예요
민주주의를 지키는 별로
한반도 평화를 지키는 별로
통일을 부르는 별로 환생하여
대한민국 역사 지키는 빛을 발산할 거예요

김희정/시인·대전시 유성구 전민동


벙어리장갑

남편의 쾌유를 기원하며
한 땀 한 땀 짜 늘이는
이희호 여사의 뜨개질이
이 땅의 어둠에 가 닿는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살아가야만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씨줄과 날줄에 걸린다
여름 불볕에도 가슴이 시린 이들은
끝끝내 들키지 않으려고
한밤중에도 단단히 오므린 채
울음을 삼킨다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의 굳게 다문 입술이
밤하늘보다 더 두텁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에
손수 짠 벙어리장갑을 끼워주는
이희호 여사의 손마디가 저릿하다
원천봉쇄 되어 버린 아침은
어느 뒷골목에 입 틀어막혀 있는 걸까

최일걸/전북 전주시 덕진구 서노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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