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미국의 예상 요구를 과다하게 부풀려 근거가 적은 우려를 미리부터 자아내는 게 과연 옳은 접근 방법이냐는 생각이다.
지난 5월1일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의료·교육협상과 관련한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의 글을 읽었다. 우 국장은 앞으로 다가올 협상에 대해 정부가 마치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표현했다.
물론 미국 요구를 미리 예상해보는 건 정부의 독점적 영역은 아닐 것이다. 폭넓게 여러 사람들의 뜻을 모으는 게 국익에도 도움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만일 의견수렴 과정에서 ‘사실’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편향된 우려가 개입한다면, 그래도 국익에 도움이 될까?
이번 자유무역협정 의료분야 협상의 핵심의제 중 하나는 우 국장도 지적했듯이 의약품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우 국장의 예측처럼 의약품 분야의 미국 요구가 △‘선진 7개국 평균가격’(A7) 전면적용 △특허기간 연장 등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우선 사실관계가 다르다. 평균가격(A7) 원칙은 국내 신약에 이미 적용되고 있다. 이 분야 미국의 관심은 오히려 자국 제약회사의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가격결정 방식을 좀더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의신청 기회를 부여받는 걸 요구하지 않을까 예상된다. 특허기간 연장에 대해서도 우리 특허법은 이미 5년 한도 안에서 임상실험 기간을 특허기간 연장으로 보상해주고 있다. 따라서 이 분야의 미국 요구는 아마도 자국 기업이 실시한 임상실험 기간을 우리 쪽이 여과 없이 수용해 달라는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요구들이 우리 보험재정에 끼치는 영향이 적다고 단정짓는 건 아니다. 다만 미국의 예상 요구를 과다하게 부풀려 근거가 적은 우려를 미리부터 자아내는 게 과연 옳은 접근 방법이냐는 생각이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보면, 신약 약값은 제약회사와 협상하도록 했다. 공보험 급여대상 의약품 가격 결정도 협상을 거치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약값 결정방식 투명성 보장이나 이의신청 기회 보장 등 미국의 요구는 근거가 약해진다. 미국이 또다른 요구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제도가 국내외 의약품 모두에 공통적용되기 때문에 우리는 좀더 자신있게 미국 요구에 대처할 수 있다.
우 국장은 또 민간 의료보험이 한-미 주요의제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 배경으로 북미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캐나다 의료예산이 삭감되고 온타리오주의 공공 의료보험 도입 계획이 취소됐음을 제시했다. 그러나 우 국장도 인정했듯이 캐나다가 미국과 1987년에 체결한 자유무역협정에도, 캐나다와 미국이 멕시코와 1992년 체결한 나프타에도 의료분야에 대한 별도 협상규정이 없다. 만약 미국이 우리보다 강한 공공의료보험을 갖고 있는 캐나다의 의료보험 시장을 겨냥했다면, 이해하기 힘든 협상 결과이다. 이런 사례를 볼 때, 미국이 우리 의료보험 시장을 직접 겨냥할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민간 의료보험 제도 정상화는 자유무역협정과 관계없이 우리 경제를 위한 과제다.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 여론조사에서 70% 이상이 의료와 교육을 개방 우선분야로 지목했다. 조사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조원동/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조원동/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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