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9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양의모 | 작가·전 대학교수
한동훈 전 법무장관이 퇴임할 때 남긴 “여의도 사투리를 쓰지 않겠다”는 말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여의도란 ‘국회’와 ‘국회의원’을 뜻하는 것이니 이 말은 의회정치에 대한 그의 소신을 피력한 것이 된다. 사투리란 지양해야 할 하급 언어를 의미하니까 그가 의회정치를 몰아내거나 최소한 개혁해야 할 적폐쯤으로 여기고 있다 할 수 있다.
이 말은 그동안 그가 내뱉은 말들의 의미를 확실하게 보여줬다. ‘일국의 장관론’(2022년 8월 국회 법사위에서 최강욱 의원에게 “저도 지금 일국의 장관인데 그렇게 막말을 하십니까”)은 과거 국가 관료의 절대적 우위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무지한’ 백성이 뽑은 대표자인 국회의원이 옛날 판서인 장관에게 대든다는 것은 지극히 ‘무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동훈 전 장관의 ‘국회의원 갑질론’(2023년 8월 법사위에서 최강욱 의원에게 “국회의원이 갑질하자고 앉아있는 자리가 아니다”)도 의회에 의한 정부에 대한 감시라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발언이다. 정부란 국민의 세금으로 세워지고 운영되는 기관이니 국민은 정부의 업무에 대해 감시하고 개입할 권리를 갖는다. 그 역할을 국민을 대리해 수행하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국민에게 고용된 장관에게 업무상의 범위 안에서 개입하는 것은 국민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인데, 이를 ‘갑질’로 폄하하는 것은 의회 민주정치의 역할을 거부하는 것이 된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닙니다”라고 한 말과도 관련이 깊다. 장관은 그 부서의 업무를 총괄하는 지위이며 따라서 검찰총장은 장관의 부하인 것이다. 장관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국회가 임명한 직책이기에 공무원시험에 합격해 그 자리에 오른 검찰총장을 지휘·감독하는 것은 장관의 당연한 임무다. 그런데도 검찰총장이 장관의 부하가 아니라는 발언은 국민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들렸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무엇인가? 국민이 국가의 자의적 통치를 철저히 견제해 국민을 위해서만 위임한 권한을 행사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도, 한동훈 전 법무장관도 이러한 기본적인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무시하고 있다면 민주정치의 수호라는 측면에서 매우 위험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싫어하는 여의도 사투리라는 것이 혹여 민주적 절차에 의한 정치라면 더욱 그렇다. ‘상명하복 검사동일체’라는 관료조직의 특징을 그대로 여의도 정치에 이식시키려고 하는 그들의 시도가 이 나라 민주정치의 근간을 흔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