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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부동산 PF 부실 ‘폭탄 돌리기’…가계부채로 전가하지 말아야

등록 2023-09-18 19:04수정 2023-09-19 02:35

아파트 단지 풍경. 연합뉴스
아파트 단지 풍경. 연합뉴스

[왜냐면] 안재환 | 인하대 경영대학원 부원장

정부는 가계부채가 관리 가능한 수준이고 당장 급격하게 부실화할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가파르게 상승하던 가계대출 연체율은 0.33%로 최근 다소 하락했다. 반면, 프로젝트파이낸싱(PF·피에프) 대출 연체율은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증권사의 연체율은 17%를 넘겨 우려할만한 수준이다. 이러한 추세를 보면 133조 원 규모의 피에프 대출이 문제지, 1000조 원의 가계대출은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계부채의 잠재 위험은 언제든지 가시화할 수 있다. 최근 가계대출 연체율의 하락은 상당 부분 대출 잔액의 급증에 기인한다. 또한, 지난 6월 은행권은 3조 원이 넘는 원화 대출채권을 회수할 수 없는 것으로 확정하고 이를 장부에서 제거했다. 이러한 대규모 부실채권 정리는 2019년 이후 처음이다. 연체율의 분모에 해당하는 대출채권 잔액은 증가하고 분자가 되는 기존 연체채권은 감소하는 가운데, 연체율이 단지 소폭 감소했다는 것은 분자의 또 다른 항목인 신규 연체채권이 상당한 규모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연체율은 다른 지표와 달리 완만히 증가하지 않고, 외부 충격에 따라 일시에 폭등하는 행태를 보인다. 2009년 10%대에 이르던 저축은행 피에프 대출 연체율이 2011년 순식간에 40%를 넘긴 것이 그 예다.

가계부채의 더 큰 위험은 정부가 지속적으로 피에프 대출의 부실을 가계로 이전시키고 있다는 점에 있다. 정부가 이러한 정책적 방향을 잡은 시점은 집값 하락이 본격화하면서였다. 피에프 부실은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악화시켜 시스템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건설사의 도덕적 해이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정부 개입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정부는 건설사에 대한 직·간접적인 금융지원에 더해, 부동산 거래와 가계대출 규제 완화를 통해 개인들이 주택을 매입하도록 적극 유도했다. 그 결과, 실수요 아닌 투자자들이 대거 부동산과 분양시장에 뛰어들었고, 5개월 새 분양가가 40% 이상 급등하는 가운데 청약 경쟁률은 수백 대 일에 이르는 투기 광풍이 재현됐다.

아파트를 높은 가격에 분양받음으로써 개인들은 피에프 부실을 가계부채로 떠안게 됐다. 특히 자기자본이 거의 없이 높은 가격에 분양을 받은 투자자들은 집값 일부는 자신의 직접 대출로, 나머지는 임차인의 전세자금 대출로 충당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에는 분양가 대부분이 가계부채의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대출 취급 과정에서 금융기관이 차주의 채무상환 능력을 충분히 고려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재 전세자금 대출에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디에스알) 규제가 적용되지 않고 있고, 주택 매입자의 디에스알 계산에는 전세 보증금이 포함되지 않는다. 거주목적으로 분양받은 경우에도, 채무자가 생전에 갚을 수 없을 만큼 긴 소득 기간을 적용함으로써 대출금액을 늘리고 있다. 이러한 대출은 비우량 대출이 횡횡하던 2008년 이전 미국의 ‘죽은 자에 대한 대출’과 닮았다.

장기 주택담보 대출이 비판을 받자 정부는 이러한 대출이 통상 만기 이전에 상환된다고 반박했다. 대출 자체는 비상식적이지만, 대부분의 장기대출이 조기에 상환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평생의 소득으로도 상환하기 어려운 거액의 대출을 차주는 어떻게 조기 상환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시나리오는 집값이 상승해 대출 시점보다 높은 가격에 부동산을 처분하는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집값은 정부의 기대와 같이 계속 상승할 수 있을 것인가? 돌이켜 보면, 피에프와 역전세에 따른 가계부채의 부실 우려는 집값 하락과 금리상승으로 촉발됐다. 이후의 정부 정책은 최소한의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해서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미 상환능력을 크게 넘어선 가계가 갚을 수 없는 더 많은 부채를 부담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하지만 다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다면 현재의 가계대출은 결국 상환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피에프 부실을 가계부채에 전가하는 방식은 현재의 가계부채 규모가 함의하는 위험성을 고려하면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폭탄 돌리기에 불과하다.

정부가 이제라도 50년 만기 대출에 제동을 건 것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40년 만기 대출도 길다. 다음은 임대인과 임차인의 대출 모두에 디에스알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피에프 부실은 별도로 처리하고, 정부가 점진적이지만 적극적으로 가계부채 축소에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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