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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기획의 냄새 진동하는 정율성 역사공원 논란

등록 2023-09-11 18:56수정 2023-09-12 02:34

6·25참전유공자회 등 전국 13개 중앙보훈단체가 지난달 30일 광주광역시청 앞 도로에서 회원 1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집회를 열어 정율성 기념공원 조성 계획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6·25참전유공자회 등 전국 13개 중앙보훈단체가 지난달 30일 광주광역시청 앞 도로에서 회원 1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집회를 열어 정율성 기념공원 조성 계획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왜냐면] 배훈천 | 광주시민회의 대표·전 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

나는 지난 2021년 자영업자의 입장에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비판한 연설로 유명세를 치렀다. 내 연설이 세간의 주목을 받자 문화방송(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나를 ‘대안우파 정치조직’의 공동대표라고 보도했다. 이 방송 때문에 극우·일베로 낙인찍혀 전방위적 비난에 시달려야 했던 나는 내 소속단체가 ‘대안우파 정치조직’이 아님을 증명하려 노력했다. ‘대안우파'란 미국에서 트럼프 집권 이후 인종차별주의, 반여성주의, 음모론, 폭력주의, 파시즘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극단주의 정치세력을 일컫는 시사용어기 때문이다. 문화방송을 대리한 대형 로펌에 개인으로 맞서 결국 법원에서 ‘정정보도문 방송’ 결정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 정율성 논란에 내 소속단체가 깊숙이 개입하면서 이런 노력이 무의미해졌다. 이 단체의 정식 명칭은 ‘상식과 정의를 찾는 호남대안포럼’이다. “호남지역의 다양한 담론 형성과 전파를 통해 호남의 정치적 고립을 지양하고 경제적 낙후를 극복하며, 더 나은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호남지역 시민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비민주당 성향의 지역 인사들이 참여한 토론 중심 포럼으로 출발했다. 국민의힘 당협위원장과 전광훈을 추종하는 인물도 함께했지만, 그들의 정치성향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자 이들의 활동이 과감해졌다. 반호남, 반중·혐중의 인종주의적 발언이 공공연해졌으며, 5·18 간첩·폭동·사태 발언까지 공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달 23일 호남대안포럼의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철회’ 성명 발표의 과정은 이제까지 유지해왔던 포럼의 정신을 전면 뒤엎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호남대안포럼에서는 대외적으로 입장을 표명할 경우, 관련 분야 전문가를 초빙해 포럼을 열고 이를 바탕으로 합의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성명은 단 하루 만에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여당 실세 의원 관계자가 제안하고 독촉해서 동의를 끌어냈고, 성명서 문안도 그가 제시했다. 나는 다른 대표의 입장 표명 요구에 응해 이날 오후 4시에 반대의견을 냈지만, 중지는 이미 정해졌다고 했다. 그 성명문은 최종적으로 문구가 수정되기도 전인 오후 5시47분에 조선일보 최상단에 기사화됐다. 기획되지 않고서야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이로써 ‘호남대안포럼은 보수여당과 밀접한 정치조직이 아니’라는 판결을 끌어냈던 내 노력은 정당성을 잃어버렸다.

정율성 역사공원 논란은 기획의 냄새가 진동한다. 반중단체의 정율성 역사공원에 대한 시비는 서울대도서관 시진핑 기념자료실과 함께 간혹 제기됐으나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데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48억원을 누구에게 바친단 말입니까?”란 격앙된 어조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정율성 역사공원 문제가 국가보훈차원에서 심각한 문제임을 파악해서 이를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지자체와 차분히 상의할 일이지 이렇게 터트리는 방식을 택하진 않았을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조선일보는 정율성 이슈를 연일 대서특필했다. 채 검토가 끝나지도 않은 단체의 성명서를 주요 뉴스로 올리고, 정부가 감사패까지 줘가며 인정했던 궁정악보 보존의 ‘공적’을 ‘약탈’로 각색해가며 끝없이 소모적인 뉴스를 생산했다.

사실 광주사람 대부분은 정율성이 유명한 음악가인 줄만 알았지, 국가정체성 논란을 불러올 인물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논란이 일 수 있는 지역 출신 인물을 관광 상품화하는 일은 비단 광주만의 특징이 아니다. 경남 밀양의 김원봉 기념관과 통영의 윤이상 음악제가 대표적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정율성은 공산당 침략군의 나팔수’라는 소리를 키우는 의도가 무엇인가? 여론몰이하기에 좋은 소재인 것 같아 아껴뒀다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때맞춰 터트려, 어떻게 해도 여당 당선자를 내기 힘든 광주를 반대한민국으로 설정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국민의힘 광주지역 전직 당협위원장이자 호남대안포럼의 공동대표인 주동식씨가 자유일보에 실은 칼럼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약무호남 국가발전” 즉, 호남이 없으면, 국가가 발전한다는 내용이다. 또, 펜앤드마이크에 게재한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이기는 3가지 접근’이라는 칼럼에서 “5·18 유공자, 새만금 잼버리, 정율성 기념관이라는 3가지 카드를 끝까지 붙잡고 호남을 무너뜨려 국힘이 총선에 승리해야 대한민국 해방의 길이 열린다”고 주장했다. 이런 망언이 언론매체에 실린다는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정부와 여당이 이 논객의 말을 따르는 것 같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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