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70년한반도평화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22일 오후 정전협정 체결(1953년 7월 27일) 70주년에 즈음해 서울광장 인근에서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대회 ‘전쟁 위기를 넘어, 적대를 멈추고 지금, 평화로!’를 열고 광화문 앞까지 행진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왜냐면] 박윤경 | 성균관대 예술대학원 석사과정
금수강산 5천년이라는 찬란한 역사를 고이 간직한 산하를 바라보며 감탄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 구성원으로서 권리와 의무에 충실한가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치욕스런 일본 제국주의 강점기에서 해방의 기쁨도 잠시, 우리 민족은 우리 의사와 무관하게 남과 북으로 갈라져야 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인 독일을 동서로 갈라 전쟁의 책임을 물었듯이 아시아에서 수백만 명을 학살한 일본 역시 그 대가를 치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 국가인 우리 민족이 강대국의 전리품이 됐습니다.
역사 이래 형성된 한 민족은 한순간에 남과 북으로 갈라져 오도 가도 못하다가 결국에는 민족 구성원끼리 총부리를 겨눴습니다. 3년이 넘는 전쟁으로 헤아릴 수조차 없는 희생을 치른 끝에 체결된 정전협정은 70년이라는 부끄러운 세월을 채웠습니다. 어느 일방에 의해 언제든지 폐기될 수 있는 휴전협정을 전쟁 없는 평화협정으로 바꾸지 못한 암울한 현실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그저 남의 일 같지만은 않습니다.
그동안 남과 북의 정치 지도자들은 7·4공동성명(1972년)을 통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합의를 이뤄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역사적 6·15공동선언(2000년)을 통해 통일의 징검다리를 만들었지만 정치권력이 바뀌면서 이 합의 역시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합의는 이행해야 합니다. 통일로 나아가는 신뢰의 약속입니다. 또한 민족적 합의는 정치 지형이 바뀐다고 해서 폐기할 수 없습니다. 합의는 신의이며 불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남쪽 사회에서 정권이 바뀌는 한이 있더라도 합의는 지속적으로 이행하고 합의 내용을 서로가 검증해야 함에도 지금 정치는 전혀 그렇지 못한 실정입니다. 민족보다 더 강한 동맹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 어떤 이유를 떠나 민족 간의 합의 내용을 철저히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분단을 고착시키기 위해 투입한 돈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민족을 위해 그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는 분단 유지비용은 우리 민족에게는 커다란 손실이며 미래 세대에게 전가하는 부채입니다. 그러나 통일을 향한 비용은 현재와 미래를 향한 부의 축적입니다. 남과 북의 기술력과 풍부한 지하 자원이 하나로 연결되면 아시아를 뛰어넘어 국제무대에서 경제 강국으로 월등히 나설 수 있습니다.
통일을 망각시키고 분단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정치는 이제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하며 구성원은 그들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래를 책임져야 할 청년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통일이냐’며 분단을 당연시하고, 전쟁이 잠시 멈추고 있다는 현실마저 망각시키는 정치는 사라져야 합니다.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결과로 우리 사회는 이미 심각할 정도로 분열돼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 역시 정치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지구 상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일원이라고 한다면 민족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는 방관자가 되지는 말아야 합니다.
정전협정 70주년이 아닌 통일원년 기념식이 서울과 평양을 비롯한 삼천리 금수강산 방방곡곡에서 성대하게 펼쳐진다는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 살아서 목포와 부산에서 기차와 자동차로 금강산과 평양을 경유해 만주벌판을 내달리고 싶습니다. 민족분단 78년과 휴전협정 70년은 늘리고 채우는 것이 아니라 지워야 할 대상입니다. 반면 통일은 새나가지 않게 하나하나 차곡차곡 채워야 할 민족의 절대적 과제입니다.
남과 북은 서로를 알아야 하며 그러할 권리와 의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을 비롯해 북에 대해 알 수 있는 매체는 남쪽 공안기관이 차단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위해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면 상대방에 대해 알 권리가 있으며, 충분한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할 방안도 나올 수 있습니다. 막고 차단하면 불신만 키우며 결국에는 더 큰 화를 면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세계 역사를 통해 충분히 경험했습니다. 전쟁을 안고 사는 분단정책도 하나하나 풀어내면 나머지는 민족 구성원들이 평화적으로 해결해 낼 것입니다.
살아생전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따라 통일된 조국 산하를 바라보고 싶습니다.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망각하는 절반의 민족과 함께해야 합니다. 미래사회를 개척해나갈 8천만 민족의 자긍심을 가지고 삼천리 금수강산이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가를 벅찬 가슴으로 만끽하고 싶습니다. 정전협정일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해 통일원년을 향한 위대한 민족의 날로 만들 수 있기를 7월의 녹음 앞에 두 손 모아 간절히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