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지하철역에서 시민들이 개찰구에 교통카드를 찍고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이상현 | 우리 모두의 교통본부 활동가·서울시 교통요금 인상에 관한 시민공청회 대표청구인
지난 12일 서울시 물가심의위원회에서 버스·지하철 요금 인상안이 통과됐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요금 인상 결정이 일방적으로 이뤄졌다고 비판하며 회의 불참을 선언했고, 민주노총 추천 위원이 회의에서 퇴장한 가운데 물가심의위원 27명 가운데 단 16명이 결정한 일이다. 이로써 버스는 8월부터 300원, 지하철은 10월부터 150원 인상된다.
서울시는 지난 2월 요금인상 이외의 대중교통 활성화 방안 검토와 제대로 된 찬반 토론조차 없는 공청회를 졸속으로 연 뒤 요금인상안을 서울시의회로 넘겼다. 사모펀드가 개입한 서울시 버스 준공영제 개선을 요구하는 버스 노동자들조차 서울시의 논의 자리에 초대받지 못했다. 서울시의회 또한 시민의 민원을 무시하고 신속하게 인상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지난 6월20일 6358명의 서울시민이 ‘서울시 시민참여 기본조례’에 의거해 ‘교통요금 인상에 대한 시민공청회’를 청구했다. 서울시청 앞에서 7일간 릴레이 1인 시위도 진행했지만 완전히 묵살당했다. 서명운동을 추진한 ‘우리 모두의 교통 운동본부’는 조례 시행규칙에 규정된 응답기한인 15일을 훌쩍 넘기도록 어떤 답변도 주지 않은 오세훈 서울시장 등을 직무유기로 경찰에 고발했다.
“적자를 해소하겠다”며 요금 인상을 강행했지만, 보다 근본적 질문에 대해 침묵하는 오 시장에게 묻는다. 요금 인상의 근거는 충분한가? 요금 인상 외 대안은 없는가? 코로나19 시기 줄어든 대중교통 이용자를 어떻게 늘리고, 대중교통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 또 대중교통 이용자들이 많아질 경우 인력과 안전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서울시는 교통요금 인상의 근거로, 교통요금이 유럽 여러 국가보다 “너무 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회권 가격만 비교할 것이 아니라 정기권이 일상화한 유럽의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 버스·지하철 요금이 오르면 하루 출퇴근에 3000원 이상 소요돼 유럽 기준 가장 비싼 나라에 근접한다. 서울시는 요금을 통한 원가회수율을 70~75%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럽에선 공공 재원이 대중교통 운영비의 50%를 부담하고 미국 뉴욕 등 주요 도시들은 70%까지 부담한다. 서울시가 말하는 ‘요금 현실화’가 대중교통 운영에 대한 공공 재정 부담 책임 회피에 불과한 이유다. 또 정부와 서울시는 ‘수익자’인 대중교통 이용자가 적자를 부담해야 한다고 하지만, 대중교통 이용으로 인한 ‘수익자’는 단지 이용자뿐일까? 프랑스 파리에서 11인 이상 고용사업장은 1971년부터 교통세를 납부한다. 대중교통으로 통근하는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장이 대중교통의 혜택을 본다는 인식 때문이다.
독일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도시들이 고물가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9유로(약 1만3천원) 무제한 교통패스’ 정책 등 공공교통 확대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바 있다. 대기오염과 온실가스 배출 저감, 교통혼잡 해소 등 사회적 혜택을 창출하는 대중교통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사회환경적 비용을 유발하는 승용차에 대해서는 비용 부담을 강화해 이용을 줄이는 방향이다. 요금을 통한 ‘원가 회수’를 넘어, 대중교통의 사회경제적 편익을 고려해 적정한 요금-공공재정 부담 구조를 만들어가는 관점으로 전환이 필요한 때다.
서울시는 2015년에도 적자를 이유로 교통요금을 인상했지만, 그 뒤 부채가 오히려 증가했다. 무임수송 등 구조적 부채 지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코로나19 3년 동안 손실도 고스란히 부채로 남았다. 공공재정 투입 없이 요금 인상만 밀어붙인다면 원가절감을 이유로 노동자를 구조조정하고, 이에 따라 안전인력 저감으로 시민안전이 후퇴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버스·지하철 등이 단순히 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이 아니라 국가와 지자체가 책임지고 공공성을 보장하는 ‘공공교통’이 돼야 하는 이유다.
오 시장은 시민의 질문을 묵살하며 교통요금 인상을 강행했지만 이것이 결코 끝이 될 수 없다. 시민들은 이동권 문제이자 공간 주권, 미래에 대한 선택권의 문제인 교통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다시금 서울시에 청구할 것이다. 단지 교통요금을 인상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서울시의 교통정책을 누구를 위해 어떻게 짜야 할지, 시민이 살아가는 도시 공간을 어떻게 편성해야 할지를 서울시가 시민과 함께 논의하고 시민과 함께 결정하기를 요구한다. 오 시장은 시민이 청구한 공청회에 나서는 것이 두려운가? 민주주의는 정치인 개인의 호불호 문제가 아니다. 오 시장은 민주주의 원칙과 절차에 따라 시민들이 청구한 공청회를 즉각 실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