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한 여성이 현대차의 탄소중립 전략을 비판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왜냐면] 홍혜란 |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세계 3위의 자동차회사 반열에 올랐다. 경쟁사들과 견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스유브이) 판매에서 호조를 보인 영향이 컸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시장에서 올해 들어 4월까지 판매한 자동차 52만 대 가운데 38만여 대가 에스유브이였다. 10대 가운데 7대 꼴이다.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의 에스유브이 비중은 2015년 36%에서 7년여 만에 두 배로 높아졌다. 유럽 시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다. 국제사회에서 ‘현대차그룹=에스유브이 회사’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다른 자동차 회사들도 에스유브이 판매 비중을 늘리고 있지만, 지난해 판매량 상위 9개 자동차회사 가운데 그 비중이 절반을 넘은 곳은 현대차그룹뿐이다. 이같은 에스유브이 증가에 대해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우려스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난해 에스유브이 차량 증가로 이산화탄소 양이 7천만t 증가해 전기차 전환으로 감축한 이산화탄소 8천만t을 거의 상쇄했기 때문이다. 공들여 진행한 기후변화 대응 노력이 에스유브이 증가로 무색해지고 있다.
일반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철강은 평균 0.9t이다. 이 철강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1.64t이 발생한다. 중형차인 현대 소나타가 1㎞ 주행할 때 이산화탄소 130g을 배출하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16번 왕복할 때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맞먹는다. 그런데 에스유브이는 중형 승용차보다 철강이 20% 정도 더 들어가고, 그만큼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많다.
그린피스가 최근 세계 상위 16개 자동차 업체의 철강 사용량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 자동차 업체들이 지난 한 해 동안 사용한 철강은 3900만~6500만t에 달했다. 프랑스 에펠탑 5천 개에서 9천 개 분량의 철강을 거리로 쏟아낸 것이다. 이들 철강 제작 과정에서만 7400만t에서 1억2400만t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420만t의 철강을 사용해 철강 사용량에서 토요타(630만t), 폭스바겐(519만t)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했다. 현대차그룹이 에스유브이 중심 전략을 펴면서 철강발 이산화탄소 발생량도 키운 것으로 분석된다.
국제에너지기구는 파리협정에서 제시한 지구 온도 섭씨 1.5도 상승 억제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2035년까지 내연차 판매를 전면 중단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그린피스는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이보다 빠른 2030년까지 내연차 판매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시대적 요구에 한참 뒤떨어지는 현대차는 2045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에스유브이 중심 판매 전략을 고수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이제 차량도 무거운 철제 갑옷을 벗어 던지고 탄소중립 시대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현대차는 먼저 에스유브이 중심 전략부터 내려놔야 한다. 수소 환원 제철 등 친환경 공법에 투자를 늘려 철강 생산 단계의 탄소 발생량도 줄여야 한다. 한발 더 나아가 원료 채취, 재료 가공, 생산, 사용, 폐기 등 자동차 전 생애주기에서 이산화탄소를 감축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2045년 탄소중립을 달성해 탄소제로사회를 여는 데 앞장서겠다는 캠페인을 전개해 온 현대차도 안다. 에스유브이는 탄소제로사회로 가는 차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