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8일 밤 서울 강남구 대치역 인근 도로가 물에 잠기면서 차량과 보행자가 통행하는 데 불편을 겪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강지선 | 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과정·<한국교통방송> 피디
날씨가 통 안 맞는다. 기상청의 예보 얘기가 아니다. 이맘때쯤 이래야 할 날씨, 해마다 몸으로 느껴온 기온, 경험으로 알고 있던, 그 시기에 맞는 날씨와 요즘의 날씨가 다르다는 이야기다. 긴 코로나19의 끝에 올해는 봄꽃 축제 한번 제대로 누려보나 했는데, 벚꽃은 예상보다 일주일가량 일찍 만개해, 정작 축제 기간엔 바닥에 점점이 짓눌린 꽃 자국만 가득했다. 사람들은 “4월이 원래 이렇게 따뜻했나”를 묻다가, 지금은 “5월이 왜 이렇게 더운지”를 궁금해한다.
이상한 날씨에 대한 기억은 지난해 여름의 경험만으로도 아직 생생하다. 중부지방에는 6월부터 열대야가 찾아왔고, 8월에는 한 시간에 100㎜가 넘는 비가 서울에 쏟아졌다. 보통 비가 줄기차게 내릴 때의 강수량이 시간당 15㎜ 정도고, 시간당 30㎜만 되어도 자동차 와이퍼의 작동이 버겁다. 그런데 기상청이 시간당 60~80㎜의 비를 예보한 그 날, 1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도시 곳곳이 순식간에 물에 잠겼다. 그러는 동안 남부지방은 극심한 가뭄으로, 1974년 이후 가장 많은 227일의 가뭄을 기록했고, 섬진강 권역의 댐 저수율은 ‘심각’ 단계가 됐다.
‘대구는 사과가 유명하지’ 하던 것은 옛말. 이제는 사과가 강원도에서 난다. 제주도에서만 나는 줄 알았던 천혜향과 레드향을 남부지방에서 재배하기 시작했고 바나나, 파파야 같은 열대과일도 재배면적을 늘려가고 있다. 한반도가 아열대 지역으로 변해가면서 과일의 재배지가 점차 북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상기후 현상이 가속화돼 기온 변동 폭이 커지면 결국 농업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상한 기후는 폭우나 폭설, 폭염 같은 자연재해로만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하는 게 아니다. 누군가의 생계를 막막하게 하고, 먹거리를 위협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올해 발간한 6차 보고서에서, 기후위기 대응은 앞으로 10년에 달렸다고 경고한다. 인류가 지금처럼 온실가스를 계속 배출한다면, 20년 안에 지구 평균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1.5℃ 상승하게 된다. 식량 위기, 새로운 질병과 변이의 출현, 극한의 폭염과 산불, 도시 침수, 잦은 태풍 발생, 사막화, 생물종 멸종 등으로 이어지는데, 협의체는 이를 막기 위한 마지막 기회가 앞으로 10년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니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 것이다. 탄소 포집 기술 등 기술발전을 통한 탄소배출 감소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전기를 절약하고, 저탄소 제품을 애용하고, 재생에너지나 환경정책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시민의 관심과 지지가 기업을, 정부를 움직이게 한다.
꽃피는 시기를 예상할 수 없게 되고, 못 견디게 뜨거운 날씨에도 버텨내야 하는 것, 도시가 삽시간에 물에 잠길 때 살아남아야 하는 것, 평생을 바쳐 재배한 농작물을 포기하고 살길을 찾아야 하는 것, 더 이상 생산되지 않아 먹을 수 없는 작물이 늘어나는 것. 그렇게 변해가는 기후와 싸우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건 자녀 세대나 손주 세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래 언젠가 닥칠지도 모를, 영화 속 지구멸망 같은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기후위기는 지금,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닥친 위험이다. 올여름에 겪을 이상기후는 어떤 모습일지, 기온은 얼마나 오르고, 이례적 폭우는 언제 어디서 얼마나 쏟아져 내릴지에 대한 일. 기후위기는 우리가 대응해야 할 현실, 오늘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