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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기억유산’ 허물고 관광객 주차장? 원주 아카데미극장 보존을 허하라

등록 2023-04-26 18:59수정 2023-04-27 02:37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인 원주 아카데미극장의 외부 모습. 원주아카데미극장보존추진위원회 제공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인 원주 아카데미극장의 외부 모습. 원주아카데미극장보존추진위원회 제공

[왜냐면] 이영범 | 건축공간연구원장·경기대 건축학과 교수

우리나라에서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 단관극장 가운데 가장 오래된 강원 원주 아카데미극장이 철거 위기에 처했다. 근현대사의 기억을 간직한 채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의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에 개관한 뒤 2006년 폐관하기까지 영화 상영뿐 아니라 학교 졸업식이나 문화공연 등으로 원주시민들과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원주 사람은 ‘씨도로’라 부르는 평원로를 따라 지은 원주극장, 시공관, 문화극장이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마지막 남은 아카데미극장이 개관 60주년을 맞이한 올해, 보존을 위한 시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주시의 일방적 행정 결정으로 철거 통보를 받았다.

원주시는 왜 아카데미극장을 철거하려는 걸까? 인근 전통시장을 찾는 방문객의 편의를 위해 낡은 아카데미극장을 헐고 주차장과 야외공연장을 설치해 원도심 상권을 활성화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원주시 원도심의 주차장과 야외공연장 현황을 보면, 이런 결정이 과연 합리적인지 의구심이 든다. 아카데미극장에서 멀지 않은 원주천 주변에 330면의 무료주차장을 이미 조성했고 인근 문화의 거리에도 187면의 주차장을 새로 조성할 계획이다. 야외공연장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전통시장을 활성화하려고 조성한 몇몇 야외공연장은 텅 빈 무대로 남겨져 있다.

우리에겐 도시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이 필요하다. 2000년대 초반 열풍처럼 불었던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으로 전국의 수많은 전통시장이 3조5천억원이 넘는 국비를 지원받아 10년 동안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주차장을 건설했지만 전통시장의 현재는 어둡기만 하다. 매출은 급감하고 빈 상가는 갈수록 늘어났다. 주차장과 야외공연장을 더 짓는다고 사람들이 전통시장을 찾아올까? 소비 패턴과 유통 구조가 바뀐 현대사회에서 주차장만으로 도시상권은 결코 살아날 수 없다. 상권을 살리려면 오히려 도시를 걷게 만들어야 한다. 안 이달고 프랑스 파리 시장이 2020년 6월 재선에 성공하면서 공약으로 내건 ‘15분 도시’ 정책 이후 전 세계 많은 도시가 걷거나 자전거로 15분 안에 편의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도시를 추구한다. 15분 도시의 핵심은 도시를 걷게 해 도시의 활력을 찾자는 것이다.

원도심은 늘 주차장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렇다고 도심에 있는 시장이나 광장을 찾는 시민들이 불편하다고 해서 매번 낡고 오래된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주차장을 짓는다면 도시는 과연 어떤 매력을 지니게 될까? 매번 지우고 다시 쓰는 도시 역사를 되풀이하는 곳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경험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간직한 장소에 대한 기억은 서로 다른 시간의 켜에 쌓인 다양한 공간의 스토리다. 미래로 이어지는 기억유산인 셈이다. 아카데미극장이 그렇다. 중고등학교 시절 시험이 끝나면 단체관람으로 시험 스트레스를 풀게 해 준 청춘의 공간이다. 아카데미극장을 통해 우리는 그렇게 청춘을 기억한다. 그래서 원주시민들은 아카데미극장을 ‘기억유산’이라고 부른다.

이런 기억유산이 왜 소중할까? <역사보존의 경제학> 저자인 도너번 립케마 국제유산전략연구소 대표는 도시에서의 역사문화유산 보존이 철거-재개발보다 훨씬 더 경제적 활동이라고 강조한다. 세계적 도시재생의 명물이 된 뉴욕의 ‘하이라인 공원’도 원래는 인근 건물주들의 요구에 따라 시가 철거하려던 고가철로였다. 하지만 ‘하이라인의 친구들’이란 시민조직의 포기하지 않은 노력이 지금의 하이라인을 뉴욕의 명소로 만들어 냈다. 만약 하이라인을 원래대로 철거하고 거대한 상업 복합건물과 주차장을 건설했다면 하이라인은 역사 속에서 아스라이 사라져 뉴욕이란 탐욕스러운 거대 도시에 익명의 건물 하나를 덧댄 것에 불과한 정체성 없는 장소가 됐을 것이다.

도시재생의 성공사례로 부르는 도시들이 도시 속 역사문화자산을 보존하고 활용하는 데 온 힘을 다하는 것은 이 자산들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문화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 삶과 관광이 함께할 수 있는 길 찾기가 가능해지며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며 도시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게 된다. 원주시민들은 애타게 아카데미로의 초대를 기다리고 있다. 빛바랜 추억 속 공간을 미래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의 소원>이란 저서에서 재력을 통해 부강한 나라가 되기보다는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강조한 백범 김구의 지혜를 배워 원주시와 시의회가 아카데미극장의 보존을 허하길 바란다. 더 나아가 기억유산으로서의 아카데미극장의 보존과 활용을 통해 시민들과 함께 문화로 미래를 여는 시네마천국을 꿈꾸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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