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백수웅 | 백수웅 법률사무소 변호사
드라마 ‘사랑의 이해’를 봤다. 신데렐라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청경과 계약직, 계약직과 정규직, 그리고 재력 있는 정규직과 가난한 정규직의 사내 연애를 다루고 있었다. 같은 은행에 있지만 신분 차이는 순수한 사랑마저 어렵게 만들었다. 보는 내내 불편했다. 그렇지만 우리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한 리얼리즘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최근 논란이 된 정순신 변호사 사건은 이미 굳어진 계급사회의 단면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기득권들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정순신 당시 검사는 ‘변호사가 시켰다’는 어처구니없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그가 그러한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그가 기득권이고 기득권을 유지할 만한 재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조국 가족은 기득권이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을 알려줬다면 정순신 변호사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모습을 보여줬다.
과연 정순신 변호사의 문제가 학교폭력만의 문제일까. 아니면 경찰청장, 법무부 장관의 인사 실패일까. 엠제트(MZ) 세대의 끝자락에 있는 변호사가 보기에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을 계급으로 나누고 신분에 따라 다르게 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정순신과 조국 같은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 생각보다 많다. 다만 주목하지 않았고 우리 스스로 체념하고 받아들였을 뿐이다. 현재의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자본과 계급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배고픈 변호사들이 기득권들을 위한 법꾸라지가 될 수밖에 없는 것도 고착한 계급사회를 보여주는 하나의 모습일 뿐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헛발질만 하는 정치권의 모습은 매우 실망스럽다. 그에 반해 바꿀 수 없는 현실에 순응하며 미래보다는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엠제트 세대의 태도는 합리적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빌라나 임대주택에 산다고 차별받았다. 차별이 익숙한 우리는 특권화한 기득권과의 신데렐라 스토리를 꿈꾸지 않는다. 좋은 신분과 계급을 물려 줄 수 없다면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결혼과 출산을 강요할 수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새근새근 자는 내 아이를 볼 때면 걱정이 든다. 앞으로 아이가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은 노골적인 계급사회일 것 같다. 신분과 계급을 뛰어넘기 위해 힘든 삶을 살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아이 키우기가 너무 무섭다.
엠제트 세대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는 묻고 싶다. 대한민국은 앞으로 기득권만을 위한 공화국이 될 것인가. 우리 사회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현재를 위해 사는 것이 엠제트 세대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