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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더 글로리’의 아픔, 학교·사회는 외면하지 말아야

등록 2023-02-20 18:43수정 2023-02-21 02:36

<더 글로리>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더 글로리>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왜냐면] 최원훈 | 법무부 인천보호관찰소 소년과 책임관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화제다. 주인공 동은은 끔찍한 학교폭력의 피해자다. 가해자들의 부모는 사건을 돈으로 무마하고, 학교는 동은에게 2차 가해를 한다. 피해자를 제외한 학교 공동체의 교육 주체들은 모두 방관자나 가해자다. 경찰은 동은을 보호하기는커녕 가해자들을 훈방한다. 돈을 받은 어머니는 동은을 버리고 떠나 가정이 해체된다. 가정과 학교와 사법체계가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 동은은 결국 사적 복수를 맹세하고 실천에 옮긴다.

드라마와 달리 현실에서 가해자는 경찰·검찰 조사를 받은 뒤 법정에서 형사처분이나 보호처분을 받는다. 그러나 현행 소년사건 처리절차에서 가해자는 보호받지만, 피해자는 가해자가 어떤 처분을 받았는지도 모를 만큼 소외되고 배제된다. 김은숙 작가는 제목을 <더 글로리>로 정한 이유에 대해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였고, 사과를 통해 잃어버린 인간의 존엄, 명예,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진심 어린 사과는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반성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보호처분은 가해자에 대한 응보가 아니라 가해자의 교화와 재사회화가 목적이다. 가해자가 보호관찰을 받으면서, 또는 소년원에 수용돼 자기 성찰과 반성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해야 진심 어린 사과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과와 보상, 화해를 통해 상처를 회복하지 못한 피해자는 드라마처럼 가해자가 되거나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몇 년 전, 13살 촉법소년이었던 한 소녀를 보호관찰 지도·감독했다. 죄명은 ‘사기’였다. 수중에 돈이 없었지만 외모를 꾸미고 싶어 미용실에서 파마와 피부관리를 받은 뒤 그 금액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소년부 법정에서 단기보호관찰(1년) 처분과 수강명령 처분을 받았다.

소녀는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한 뒤 화물트럭을 운전하던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친인척이 없었던 소녀는 보육시설에 입소했다. 5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 이유는 보육원에서 살고, 장애인 친구를 도와주며 친하게 지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이른바 잘 나가는 친구에게 찍혀 왕따를 당했다. 노는 친구들은 수시로 소녀를 괴롭히고 폭행했다. 학교와 보육원 생활에 부적응한 소녀는 가출을 반복하며 수많은 쉼터를 전전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만난 불량 교우들과 어울리며 원조교제와 성매매를 해서 생활비를 벌었다. 결국 중학교 2학년 때 조현병과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고 정신과 병동에 보호조치됐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보호관찰 담당자인 나와의 첫 면담에서 소녀가 말했다. “전 폭력적이에요. 초등학교 때부터 가출했고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어요.” 학교폭력의 피해자였지만, 소녀는 자신을 폭력적이라고 표현했다. 목과 팔에 새겨진 장미 문신들은 소녀가 자신에게 가한 폭력이자 위로의 흔적이었다. 학교폭력과 소년범죄는 가정의 해체, 양극화, 공교육의 붕괴, 물질만능주의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근본 원인이라는 점에서 학교와 사회는 소녀의 아픔을 외면한 방관자다.

지난해 10월 법무부가 발표한 소년범죄 종합대책의 주요 내용 가운데 ‘소년범죄 피해자 권리 강화’에 따라 법원이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심리기일·장소를 통지하고, 소년사법 절차에서 피해자 참석권을 보장하는 규정이 신설된다. 소년법의 목적은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국가는 보호처분을 통해 가해 소년이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를 해서 피해자의 회복을 돕도록 교화할 것이다. 학교와 지역 사회도 공동체의 재통합을 위해 회복적 사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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