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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거제로 가는 ‘제2 희망버스’를 타자

등록 2022-07-20 18:56수정 2022-07-21 02:08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68개 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한 7·23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희망버스 세부계획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1㎥ 철제구조물에 들어가 농성하고 있는 대우조선 하청지회 유최한 부지회장의 모습을 묘사한 피켓을 들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68개 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한 7·23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희망버스 세부계획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1㎥ 철제구조물에 들어가 농성하고 있는 대우조선 하청지회 유최한 부지회장의 모습을 묘사한 피켓을 들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왜냐면] 박래군 | 4·16재단 상임이사

겨우 1㎥의 철제감옥.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그 좁은 공간에 사람이 몸을 욱여넣고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가로·세로·높이 1m인 철제구조물에 갇힌 노동자.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일까 상상도 하기 힘들다. 1평 감옥도 너무 힘든데 손발을 웅크린 채 들어가서 손과 발도 뻗지 못하는 그런 0.3평짜리 감옥은 세상에서 처음 봤다. 그렇게 노동자가 자신을 감옥에 가둔 게 지난달 22일이었다. 저렇게 살다가 나오면 그 후유증이 오래갈 텐데 걱정이다. 유최안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의 철제감옥 농성과 함께 6명의 하청노동자들이 조선소 도크 안에서 고공농성 중이다.

경남 거제·통영·고성지역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조선소 도크를 점거하고 파업에 들어간 때는 6월2일이었다. 우리나라 조선업이 불황의 긴 늪을 벗어나 활황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다. 세계 조선 물량 수주 1위라는 희망 섞인 기사들이 언론에 등장하고 바로 이어 이들은 왜 파업에 들어갔을까?

다른 업종처럼 조선소 하청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들은 처지가 다르다. 하청노동자들은 원청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일한다. 일은 힘든데 임금은 적으니 기술을 가진 노동자들이 조선소를 떠난다. 수주 물량은 엄청나게 확보했는데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지역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은 2014년에 평균 연봉 4974만원을 받았다(15년차 노동자 기준). 2021년에는 3429만원으로 감소했다. 네이버에서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서를 찾아보니, 2022년 기준 300인 이상 사업장 1년차 초임 평균 연봉은 5084만원이었다.

조선업 불황기와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시기 노동자들은 임금 삭감을 감내했다. 하지만 조선업이 활황기로 들어선 지금도 이걸 회복시키려 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이 아니라 최소한의 회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지난 8년여 세월 동안 천정부지로 치솟은 부동산가격, 세금, 이자비용, 각종 물가상승분은 포함시키지도 못했다. 올해 시중 물가만 1년 새 7%가량 뛰었다. 힘든 일을 하면서 박한 임금을 받아야 했던 이들 노동자는 비정규직 차별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한다. 폭력은 하청노동자들이 저지르는 게 아니라 원청 정규직 노동자와 하청 관리직들이 저지르고 있다. 이들은 하청노동자들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으면서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을 방해하고 있다.

이런 파업이 50일가량 지속되는데, 100%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통해 대우조선해양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정부는 아무런 문제해결 의지나 능력이 없다. 반성해도 시원찮을 정부가 대통령부터 나서서 불법을 엄단하겠다며 공권력 투입을 시사하고 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파업 52일째인 7월23일 희망버스가 전국에서 다시 거제로 출발한다. 2011년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갔던 그 버스다. 35m 상공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농성하던 김진숙을 살리자고 출발했던 그 희망버스가 11년이 지나 다시 거제로 출발한다. 11년 전 희망버스가 정치권도 움직이고 사회적 압력이 돼 김진숙이 살아 내려오도록 했던 것처럼, 거제지역 하청노동자들이 조선소 도크 1㎥ 철제감옥에서 걸어 나오고, 6명 고공농성 노동자들이 무사히 땅을 밟을 수 있게 하려는 간절한 연대의 희망버스다.

힘써 일하고, 위기 때마다 고통을 전담하는 11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실은 국가 경제를 받쳐주고 있는 슬픈 원동력이었음을 이젠 인정해야 한다. 0.1%도 안 되는 소수 기업인과 대주주, 초국적 자본들의 배만 불리는 불의한 구조가 이젠 개선돼야 한다. 모두의 삶이 안전해야 이 나라의 민주주의도, 경제도 튼튼해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노동 3권을 개악하려다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윤석열 정부가 그 전철을 밟지 않기 바란다. 눈물을 머금고 조선소를 떠난 노동자들이 다시 돌아와 조선소가 활기를 되찾는 날이 올 수 없을까? 하청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각종 차별과 위험의 외주화가 사라져 모두가 안전하게 작업하는 노동환경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이번 희망버스는 절망스러운 노동현실을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방향으로 돌리는 시민들의 버스가 될 것이다. 절망스러운 소식이 많은 세상이지만, 이렇게 다시 우리가 이 사회의 안전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함께 거제로 가는 버스를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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