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모 랴오닝이 모습을 드러냈다!”
25일 오전 10시. 일본 방위성 통합막료감부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초계기 P-3C와 일본의 호위함 ‘사미다레’는 항모 랴오닝 등 6척으로 구성된 중국의 항모 전단이 난세이제도의 미야코지마 북동쪽 110㎞ 해상을 지나 서태평양으로 동진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중국의 항모가 규슈~오키나와~대만으로 이어지는 중국의 방위선인 제1열도선 밖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중국의 장카이Ⅱ급 프리깃함에선 함재헬기 젠-9가 이륙해 미야코섬 남동부 10~30㎞ 주변을 정찰했다. 이런 중국 해군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은 오키나와 나하의 항공자위대 제9항공단 전투기를 긴급 발진했다.
24~25일 이뤄진 중국 항모의 이례적인 움직임은 남중국해를 배경으로 이어져 온 미-중 갈등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의 ‘핵심적 이익’을 둘러싼 사활적인 갈등으로 악화되는 상황을 예고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대만 발언으로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중국의 랴오닝 항공모함 편대가 24일(현지시각) 원양훈련을 위해 처음으로 서태평양으로 항진했다. 25일에는 랴오닝함과 함께 항행하던 프리깃함에서 이륙한 초계 헬기가 일본 영공 10㎞ 지점까지 접근하는 바람에 일 항공자위대 전투기가 긴급발진했다. 사진은 젠-15 함재기가 탑재된 항모 랴오닝의 갑판. 베이징/AFP 연합뉴스
현재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정세의 가장 큰 불확실성 요소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차기 대통령의 등장이다. 트럼프는 지난 2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중국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반드시 수호한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핵심 이익’ 중에서도 핵심인 ‘하나의 중국’ 원칙을 훼손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 23일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차기 트럼프 행정부의 의향을 받아들여 대만과의 군사교류 등의 내용이 담긴 2017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에 서명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5일 “견결히 반대하며, 미국에 엄정한 항의를 전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11월 등장한 시진핑 정권과 우호적인 미-중 관계 형성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이 미국에 요구한 것은 양국이 서로의 핵심 이익을 존중한다는 ‘신형 대국관계’였다. 그러나 중국이 2013년 10월 동중국해에서 방공식별구역을 일방적으로 확대하자 미-중 관계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후 미-중 갈등은 중국이 무인도 매립과 군사기지화를 진행 중인 남중국해로 확대됐고, 이제 전선이 대만으로까지 확대되는 중이다.
중국은 강 대 강으로 맞서고 있다. <환구시보>는 26일치 사설에서 “중국 항모가 미국의 핵심이익 지역 주변에 계속 가서 돌아다니는 능력이 있다면, 미국이 중국에 가하고 있는 일방적 압박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며 “제1열도선은 물론 제2열도선도 넘어 중국 함대가 순항해본 적이 없는 해역으로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압도적인 해군 전력에 맞선 중국의 기본적인 방어 전략은 탄도미사일 능력을 바탕으로 ‘제1열도선’ 안으로 미국 전력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으며(접근 저지), 일본 오가사와라 제도~괌~파푸아뉴기니를 잇는 ‘제2열도선’ 안에서는 미군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약(영역 거부)하겠다는 ‘접근저지·영역거부 전략’이다. 방어적 전략 개념이었던 ‘열도선’이 어느새 공세적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또 남중국해의 인공섬과 비행장 방어를 위해 500기에 이르는 장거리 미사일 배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파라셀제도(중국명 시사군도)의 인공섬인 우디섬(융싱다오) 등 3개의 인공섬과 이곳의 비행장 방어를 위해 장거리 미사일인 ‘훙치-26’(SA-21)을 비롯해 500여기의 미사일을 하이난섬에 반입했다고 미국 <폭스뉴스>가 미 정보기관 소식통을 인용해 2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중국의 도전에 맞서 미국은 전후 70여년 동안 봉인됐던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해제하고, 미-일 동맹을 지역 동맹에서 ‘글로벌 동맹’으로 역할과 위상을 강화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27일(현지시각) 진주만 방문은 이런 미-일 동맹 강화작업의 대단원의 막을 올리게 될 전망이다. 아베 총리는 2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침몰한 미국 함정 위에 세워진 애리조나기념관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함께 방문해 헌화하고 추도한다.
미-중 갈등과 미-일 동맹 강화라는 동북아를 둘러싼 강대국의 최근 흐름은 한국의 외교 전략에 커다란 숙제를 던지고 있다.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흡수된 한국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 등에서 보듯 중국 견제의 최전선에 나설 것을 요구받는 중이다. 자칫하면 미-중 갈등의 1차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트럼프 당선자는 한발 더 나아가 동맹에 대한 추가비용을 치르라며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까지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도쿄 베이징/길윤형 김외현 특파원,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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