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7일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한 뒤 묵념하고 있다. 히로시마/AP 연합뉴스
‘한국인 위령비’는 왜 지나쳤나
미국 “안전문제 때문” 핑계 궁색
식민지배 부각으로 꼬일까 피한 듯
정부 ‘한국인 위령비’ 외면에도 침묵
G7정상회의 불참 논란에
청와대 “참석 요청 받은 바 없어”
박 대통령 에티오피아서 특별연설
“아프리카 새마을운동 기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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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7일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방문하면서도, 공원 내에 있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는 방문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을 바라보는 미·일과 한국의 이해관계 및 시각차가 큰 탓이긴 하지만, 한국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과 관련해 관심을 모으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일정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일정과 상관없이 ‘아프리카 순방’을 추진했다.
일본 언론은 지난 3월부터 “5월 이세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을 초청하는 쪽으로 조정을 하고 있다”고 잇따라 보도해왔다. 당시 <티브이 아사히>는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주요 7개국 외에도 복수의 국가 정상을 초대하는 관례가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을 초대하는 쪽으로 조정을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위안부 합의 이후 관계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한국과 연대를 한층 더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보도했다. 박 대통령의 에티오피아 국빈 방문을 수행 중인 정연국 대변인은 현지 브리핑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공식적으로 받은 바 없다”고 부인하면서 “아프리카 순방 일정은 주요 7개국 회의에 훨씬 앞서서 정해졌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일본으로선 당사자인 한국의 대통령이 현장에 없기에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인 위령비 방문에 대한 외교적 부담을 덜게 됐다.
한국 정부는 이날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방문하고 일본인 피폭자들도 만났지만,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는 방문하지 않은 데 대해 아무런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외교부 당국자가 익명을 전제로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 평화공원 방문 소감 발표 때, 미 현직 대통령으로서 최초로 히로시마 현장에서 한국인 희생자를 명시적으로 애도하였다는 점을 평가한다”며 “한국인 희생자들을 미국, 일본 희생자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분명하게 언급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찾지 않은 데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
한국 정부는 한달 전까지만 해도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미-일 양자 문제’로 보고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이 확정되고, 한국인 위령비 방문이 이슈로 떠오르자 뒤늦게 무리수를 둬 가며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인 위령비 방문을 강도 높게 요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 싱크탱크 전문가들은 “한국의 요구가 워낙 강해 깜짝 놀랄 정도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쪽은 한국인 위령비를 방문하지 않은 이유로, 오바마 대통령의 안전과 미국 내 정치적 반발을 고려한 동선 배치 때문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일본 원폭 피해자들의 예기치 못한 시위 등을 고려해 동선을 최소화하려 했다는 게 표면적 이유다.
또 미국 내 참전자 단체 등의 반발을 우려해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체류 시간을 최대한 줄이려 한 것으로 보인다. 체류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방문을 ‘사과’로 해석할 여지가 커진다는 이유에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오후 5시25분께 공원에 도착해 오후 6시15분께 떠났다. 체류 시간은 약 50분 정도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일본 방문을 활용해 과거 적이었던 미-일이 ‘화해의 동맹’을 이뤄냈다는 점을 여러 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그 정점이 히로시마 방문이었다. 미국으로선 ‘3자’인 한국이 끼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걸 원치 않았을 수 있고, 일본도 오랫동안 공들여온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이 한국인 위령비 방문으로 빛이 바래는 상황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식민치하에서 히로시마에 머물던 한국인 8만명 가운데 5만명가량이 피폭되고 3만명 정도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히로시마 전체 피폭자의 10% 정도에 이르는 수치다.
한편, 에티오피아를 방문중인 박 대통령은 이날 아프리카연합 회의 특별연설에서 “아프리카 맞춤형 ‘새마을운동’에 기여하겠다”고 말했고, 정부는 아프리카연합에 평화기금으로 20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워싱턴 히로시마/이용인 길윤형 특파원, 이제훈 기자 yyi@hani.co.kr
오바마 27일 히로시마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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