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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가해 주체도 없이…‘침략’ ‘식민지배’ ‘사죄’ 단어만 포함

등록 2015-08-14 20:42수정 2015-08-14 22:07

아베 신조 일본 총리(맨 앞줄)가 14일 오전 부인 아키에(아베 총리 왼쪽 뒤)와 함께 야마구치현 나가토시에 위치한 아버지 아베 신타로 전 외무상의 묘에 참배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아버지의 묘에 참배한 뒤 이날 오후 ‘아베 담화’를 발표했다. 야마구치/교도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맨 앞줄)가 14일 오전 부인 아키에(아베 총리 왼쪽 뒤)와 함께 야마구치현 나가토시에 위치한 아버지 아베 신타로 전 외무상의 묘에 참배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아버지의 묘에 참배한 뒤 이날 오후 ‘아베 담화’를 발표했다. 야마구치/교도 연합뉴스
아베 담화 내용과 평가
한국의 광복 70주년, 일본의 패전 70주년을 하루 앞둔 14일 나온 ‘아베 담화’는 역사수정주의에 경도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개인적 신념과 주변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외교적 현실 사이의 아슬아슬한 타협물이라 평가할 만하다.

아베 총리는 2012년 8월 두번째 집권을 위해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서며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동원 과정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와,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한 무라야마 담화 등 “일본의 역사 관련 3개 담화를 모두 수정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2013년 4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는 “침략에는 정해진 정의가 없다”는 발언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고, 2013년 12월엔 야스쿠니신사를 전격 참배해 한국·중국 등 주변국은 물론 미국으로부터도 “실망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 뒤에도 아베 총리는 “역대 일본 정부의 담화를 계승하고 있다”고는 말하면서도, 자신의 입으로는 무라야마 담화의 핵심 표현인 ‘식민지배와 침략’ 등을 언급하길 꺼리는 태도를 보여왔다.

개인신념·외교현실 사이서 타협
종전 대신 패전 인정하기도
한국과 관련해선 기존담화 못미쳐
식민지배 행적·강제동원 언급 안해
일 시민단체 “진심이라 생각 안돼”

하지만 이날 아베 담화에선 그동안 한국과 중국 등이 요구해온 무라야마 담화의 핵심 표현인 ‘침략, 식민지배, 사죄, 반성’ 등 네 가지 표현을 모두 언급하는 변화를 보였다. 일본이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자행한 행위로 한국,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 피해를 끼친 점에 대해 사과하는 모습도 보였다. 일본인들이 즐겨 쓰는 ‘종전’이란 표현 대신 “70년 전 일본이 패전했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인정했다. 그러나 담화는 일본이 만주사변에 이르는 과정을 길게 설명하며 일본이 전쟁을 벌이게 된 이유를 정당화하려는 태도를 보였고, 일본의 당시 행위가 ‘침략’임은 끝내 명확히 인정하지 않았다.

한반도 식민지배에 대한 인식에 초점을 맞추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이번 담화는 무라야마 담화에서 시작돼 간 담화(2010년)에서 정점을 찍은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 정부의 역대 역사인식에서 상당히 후퇴했다. 우선 1995년 일본 패전 50년을 맞아 발표된 무라야마 담화는 “식민지배와 침략에 의해 아시아 여러 국가들에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겼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1998년 김대중-오부치 파트너십 선언에서는 일본의 사죄 대상을 ‘한국’으로 명시했다. 2010년 간 담화에선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뤄진 식민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명확히 언급했다. ‘식민지배 자체가 불법’이라는 인식에까진 이르지 못했지만, 식민지배가 ‘한국인의 뜻에 반해’ 이뤄졌음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일본, 과거사 관련 주요 담화
일본, 과거사 관련 주요 담화
그러나 아베 담화에선 한반도 식민지배의 구체적 가해 책임에 대한 언급을 회피한 채 “식민지배로부터 영원히 결별하고, 모든 민족의 자결의 권리가 존중되는 세계가 되어야 한다”는 추상적 선언에 그쳤다. 식민지배 동안의 황민화 교육, 창씨개명 등 여러 강압적 조처와 현재 한-일 간 주요 외교현안인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서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 시민단체들도 부정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이날 담화 직후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발전시키는 모임’은 “무라야마 담화의 4개 핵심 표현은 포함됐지만, 지난 대전에 대해 침략이었다고 분명히 언급하지 않고 도망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나가사키원폭피해자협의회의 야마다 히로타미 사무국장도 “이번 담화가 말하는 것이 국회에서 심의중인 안보법제와 180도 다르다. 진심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정말 화가 난다”고 말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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