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시설이 포함된 일본 근대 산업혁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이 사실상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한-일 간 관련 협상은 막판까지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독일 본에서 개막한 39차 세계유산위원회(WHC)는 4일 오후 10시(한국시간)부터 속개되는 심사회의에서 일본쪽이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유산군: 규슈-아마구치 지역’이란 제목으로 신청한 근대기 산업시설의 등재 여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위원회 논의가 순조롭게 이뤄지면 최종 등재 여부는 이날 오후 늦게라도(한국 시각으로는 4일 밤 또는 5일 새벽에라도) 결정될 수 있다. 한국 쪽은 강제징용 사실의 명기를 요구해왔고, 지난달 한-일 외교장관 회담 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원만히 타결하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긴밀히 협의해나가기로 했다”고 말하는 등 사실상 합의가 이뤄진 듯 했다.
하지만 일본 쪽이 ‘한국의 의견 진술’을 문제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등재 여부를 둘러싼 한-일 간 교섭은 막판까지 진통을 겪는 모양새다. 한국이 위원국 권리인 ‘의견 진술’에서 강제징용 등 역사 문제를 거론할 가능성에 대해, 일본 쪽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교도통신>은 2일 보도에서, 이 경우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일본이 발언문 내용을 사전에 조율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한국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기야마 신스케 일본 외무성 외무심의관(차관보급)이 지난달 30일 비공개로 한국에 와서 1일 김홍균 차관보와 조태열 제2차관을 면담한 데 이어 2일 김 차관보를 다시 만난 것도 이같은 현지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양쪽은 독일에서도 3일 양자 접촉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한-일이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표 대결까지 가게 되면 양국 관계에 중대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윤병세 장관이 취임 2년여 만에 최근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한 데 이어, 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식에 양국 정상이 자국 행사에 참여하는 등 호전되는 듯했던 양국 관계가 ‘경색 국면’으로 도로 원위치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심사회의에서는 한국이 등재를 신청한 ‘백제역사유적지구’에 대한 심사도 진행된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충남 공주와 부여, 전북 익산에 있는 백제유산 8군데로 이뤄져 있다. 애초 심사 차례가 일본 산업유산군(13번째)보다 뒤(15번째)로 밀려 5일 오전(한국시간) 등재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였으나, 유네스코쪽이 3일 일본 산업유산의 심사일정을 뒤로 늦추면서 심사가 앞당겨져 4일 저녁께(한국시간) 등재 여부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유네스코 자문기구로 세계유산의 사전심사를 맡아온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등재를 권고한 바 있어 이변이 없는 한 한국의 12번째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유력해 보인다. 등재가 확정되면 백제유산으로는 처음 세계문화유산이 된다
김외현 노형석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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