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28일 일본 문부과학성이 교과서 집필의 지침이 되는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내용을 담았다는 소식을 듣고, 한-일 관계가 이제 다시는 돌이키기 힘든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직감했다.
한-일 간에 ‘교과서 파동’이 시작된 것은 30여년 전인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 문부과학성은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검정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중국 대륙(나중에 동남아시아로 확인)을 ‘침략’했다고 쓰인 부분을 ‘진출’했다고 고치도록 한 이른바 ‘교과서 파동’을 일으켰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각국에서 분노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파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1982년 8월 스즈키 젠고 내각의 미야자와 기이치 관방장관이 “아시아 주변국들과 우호·친선을 위해 이런 비판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며 정부가 책임을 지고 시정하겠다”는 담화를 내놓은 덕분이다. 일본 정부는 그해 11월 교과서 검정기준을 고쳐 “일본의 침략과 가해의 역사를 왜곡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것이 지난 30년 동안 한-일 역사 갈등의 마지막 안전판 구실을 해온 이른바 ‘근린제국조항’이다.
한국민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일본 교과서 기술이 독도 관련 문제임을 떠올려 볼 때, 아베 신조 일본 정부의 28일 조처는 사실상 근린제국조항에 대한 사형선고라 부를 수 있다. 모두가 고노 담화(위안부 동원 과정의 강제성을 인정한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일본의 침략과 식민 지배를 인정하고 사과한 담화)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일본의 3대 역사 담화 가운데 가장 약한 고리인 미야자와 담화가 해체된 셈이다.
이제 우린 일본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갈래다. 한 길은 일본처럼 국가의 교과서 개입과 애국주의 교육을 강화하는 길이다. 한국 교육부는 ‘엉터리’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이 사실상 제로를 기록하자 교과서의 국정화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등 과거 회귀의 길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다른 길은 한·일 시민사회의 연대를 강화해 일본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도록 압박하는 길이다. 그동안 한·일 두 나라의 시민단체들은 올바른 역사 교육을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05년엔 한·일 시민단체들이 모여 <미래를 여는 역사>를 썼고, 이는 2012년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로 발전했다. 이 교과서를 만든 단체들은 한해에 한번씩 한·중·일 3국을 돌아가며 청소년 캠프도 연다. 한·일 양국의 학자·교사·시민단체가 힘을 모아 만든 역사 부교재가 10여개를 헤아린다. 1982년 교과서 파동 이후 탄생한 일본의 평화단체인 ‘피스보트’는 활동 영역을 평화·반핵·헌법수호·재해구호 등 전방위로 넓히고 있다. 2005년부터는 한국의 환경재단과 함께 ‘피스 앤 그린’ 보트도 띄워 두 나라 젊은이들이 만나 역사와 생태 문제를 논의한다.
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미·일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이라는 동아시아의 근본적인 지정학적 변화 앞에서 일본의 초조감은 깊어지고, 우경화도 지속될 것이다. 한국의 맞불 대응이 일본의 우경화를 멈출 수 있을까. 아무도 언급하지 않지만, 일본 정부의 독도 도발에 가속 엔진을 달아준 장본인이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2012년 8월 독도를 방문한 이명박 전 대통령임을 기억해야 한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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